비상의 땅을 향해 33. 출 17: 1-7, 르비딤의 목마름 앞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2023.06.27 10:26
예수인교회
출 17: 1-7, 르비딤의 목마름 앞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해변가를 가면 작은 무동력 요트들이 푸른 바다를 힘차게 가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람의 방향은 한 방향인데, 그 수많은 작은 요트들은 각각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 그것은 바람은 한 방향이지만, 그 배가 가는 방향을 정하는 것은 돛의 방향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그 배를 움직이지만, 그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삶에는 고난의 바람, 어려움의 바람이 불고 때로는 질병의 파도가 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어려움과 고난이 아니라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가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 고난의 바람과 풍랑에 휘말릴 수밖에 없지만, 그 순간 우리의 돛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붙들며 하나님의 방향으로 나간다면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어려움과 아픔은 반드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가운데 ‘르비딤’의 목마름과 같은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붙들며 나가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신 광야를 떠나서 계속 시내 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행군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신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나’가 내렸던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그곳에는 ‘엘림’이 있었고, 만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축복의 장소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떠나면서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이곳을 떠나도 만나를 먹을 수 있나?’
그러나 ‘만나’는 어디에 내렸습니까? 어느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곳에 내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달린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곳에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신 광야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광야가 그들의 목적지기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세상적으로 풍요롭고 축복의 장소라 해도 광야는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떠나는 곳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세상의 길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떠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시온성’을 향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광야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한참 걸어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르비딤’의 뜻은 ‘쉬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곳은 당시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물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도착하면 물을 충분히 마시고 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없는 겁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실망이 컸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때로는 ‘르비딤’을 만납니다. 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 물이 없는 겁니다. 기대를 아예 안했으면 모르겠는데 기대를 많이 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에 감당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좌절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광야를 거쳐 ‘르비딤’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순종해서 왔으면 광야 가운데 자꾸 좋은 일만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큰 시련이 닥친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를 향한 계획은 광야가 아니라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고난과 문제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이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믿음의 성도의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말씀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다.”
여기서 ‘대들다’는 뜻은 ‘사냥개가 먹이를 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망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폭발 직전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 물에서는 하소연에 가까운 불평이었다면, 오늘 ‘르비딤’의 불평은 자신들이 모세의 말에 따라 순종해서 왔는데, 기대했던 물이 없자 폭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평과 불만이 7절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라는 의심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작은 불평에서 시작된 부정적인 생각이 결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만 닥치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겠다’는 말입니다. ‘목말라 죽고, 배고파 죽고, 적들이 너무 강해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죽겠다 죽겠다’하니까,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습니다.
상황 앞에서, 문제 앞에서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17장을 보면,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잠잠하라!” 부정과 불평의 말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입에는 부정과 불평의 말이 아니라 믿음과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그’라는 의미는 앞의 의미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팡이는 무슨 지팡이입니까? ‘출애굽기 4장 20절’에 그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 광야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상황 앞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시는 역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지, 그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하나님이 지금도 나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문제와 상황 가운데서 내가 들고 있는 낡은 지팡이가 아니라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여기서 ‘앞에 서겠다’는 뜻은 ‘수고를 하다, 섬기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문제가운데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의 순간, 이스라엘 백성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의 순간 서쪽 그 먼 시나인 반도에서 동풍을 일으키시며 달려 오셨던 것처럼,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 때문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에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 가운데 역사하신 것입니다.
고난과 문제 앞에 믿음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낙심과 불평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이 ‘르비딤 반석’의 사건을 ‘고린도전서 10장 3절, 4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목마름, 우리의 갈급함을 위해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가운데 있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질병가운데 있다고 주님이 나를 외면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 중에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반드시 이끌고 계십니다. 반드시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기도제목: 내 삶에 닥친 르비딤의 목마름 앞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행복의 초대에 참석한 VIP가 목장에 잘 정착하고, 7월의 ‘예스미션’을 잘 준비하도록,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