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31. 출 15:19-27, 마라 앞에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2023.06.22 07:5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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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5:19-27, 마라 앞에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찬 289장(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하버드 대학’의 ‘윌리엄 제임스’교수는 ‘인간이란 ’attitude’가 바뀌면 인생이 바꾸어 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마음의 자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의 태도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말씀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이라는 단어의 뜻이 “판단하다, 마음에 두다‘라는 뜻으로 영어 성경은 ’attitude‘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믿음의 성도, 즉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자세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attitude’는 단어는 라틴어 ‘앱투스’에서 나온 단어로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반응하는 정신의 준비 상태’를 말합니다. 쉬게 말하면, 사람들마다 각자의 마음의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겪든지, 어떤 사람들 대하든지 나는 이렇게 반응하기로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거기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또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은 상황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고난과 고통으로만 여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반대로 똑같은 고통의 시간을 지났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주님께 더 나아가고, 주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며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과정으로 삼았던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태도, 삶의 태도’ 즉 ‘attitude’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드디어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에 들어서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그런데 본문 23절,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불평하였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여정가운데 제일 먼저 경험한 것은 ‘마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라의 쓴 물’ 앞에서 그들이 보인 제일 첫 번째 반응은 ‘불평’이었습니다. ‘원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모세에게 한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게 하셔서, 그 쓴 물을 단 물로 바꿔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라는 놀라운 기적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뿐 아니라 그 사건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엘림’입니다. 이 ‘엘림’이란 뜻은 ‘큰 상수리나무들’이란 뜻으로 풍요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엘림’의 축복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16장에 가면 어떻게 합니까? 또 불평합니다. 이번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이것이 광야에 있는 40년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이 광야 생활 내내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불평과 원망이 끝내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는 어떤 믿음과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바로 세상의 부정적인 마음과 삶의 태도가 아니라 이 ‘마라’와 같은 상황조차도 주님을 더 바라보고 동행하는 기회로 삼은 긍정적인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의 잘못된 두 가지를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의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민수기 13장’을 보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점탐꾼을 보내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10명의 정탐꾼이 뭐라고 합니까?

‘민수기 13장 32절, 33절’에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나를 메뚜기처럼 보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초라하게 인식하면 그들도 나를 초라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광야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의 상태는 이미 “나는 메뚜기다, 나는 보잘 것 없다, 우리는 비참한 인생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무엇을 보던지 다 메뚜기의 모습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오직 메뚜기 같은 존재로써, 연약한 존재로써 ‘내가 할 수 없는 것’만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함께 같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자신들의 밥으로 보았기 때문에 똑같은 것을 보고도 결과가 달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자세, 삶의 태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란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노랗고, 빨간 안경을 보면 모든 것이 빨간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의 안경을 벗고 성령의 안경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의 습관이라는 마음의 태도,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타인에 대해서는 ‘원망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홍해’를 건너자마자 ‘마라’앞에서 그들이 제일 먼저 보여 준 삶의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원망이었습니다.

23절, 24절을 보면 그들은 광야의 시작의 첫 마디가 원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야의 삶 동안 계속해서 원망합니다. 바로 그들의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동안 습득한 그 절망의 습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든지 ‘나는 안 된다, 나는 초라한 인생이다, 나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가정은 회복이 어렵다’는 부정과 원망이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안 된다, 상황 때문에, 형편 때문에, 건강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렇게 우리를 끝없이 절망과 원망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이 잘못된 마음과 삶의 태도를 바꾸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그리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 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가슴 아프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의 문제와 건강과 고난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문제 앞에서, 고난 앞에서, 나의 가정의 문제 앞에서, 건강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세상의 절망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희망의 마음과 삶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모든 상황과 환경과 형편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의 자세와 삶의 태도가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예스미션 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또한 예스미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온전히 이뤄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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