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27. 출 13: 1-16,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3.06.15 10:3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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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3: 1-16,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찬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출애굽기 11장, 12장, 13장’은 유월절과 관련된 말씀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같은 말씀을 반복하실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오늘 말씀과 같이 중요한 말씀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유월절’의 사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유월절’의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지키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규례가 무슨 의미가 있나?’싶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이 ‘유월절’의 의미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고,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고, 그리고 본질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은 존재라는 것을 왜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내가 구원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에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까?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고, 또 이 구원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결정이요, 일방적인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원을 받고도 이 구원받은 사실을, 그 의미를, 그 본질을 쉽게 잊고 놓쳐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은 이 구원받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성경 전체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역시 ‘유월절’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 이 ‘유월절’이 단지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임을 기억케 하시는 것입니다.

1절, 2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태를 제일 먼저 열고 나온 것 곧 처음 난 것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에게 바쳐라.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초 태생은 다 내 것으로 돌리라’, ‘처음 태어난 것은 다 내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본문 ‘11절에서 16절’에도 또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계십니다. 12절에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는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초 태생, 처음 난 것들 또한 마땅히 다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지신 하나님께서 그 장자를 ‘내 것’이라고 구별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함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그 말씀을 통해 유월절의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난 것을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 처음 난 것만을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생명으로 옮겨 놓으신 구원의 이 섭리를 기억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첫 번째 방법’인 것입니다.

처음의 것을 드림으로써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전부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난 것,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나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상징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십 분의 1은 하나님의 것이고, 십 분의 9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십의 일조’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해 내게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새벽에 하루의 시작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이 새벽 예배 시간만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23시간은 내 시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첫 시간을 드림으로써 오늘 24시간 모두를 주님께 드리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내 시간과 내 생명과 내 소유와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오늘 나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겠습니다.”하는 믿음의 결단이 바로 우리가 이 새벽예배를 드리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 태생, 처음 난 것을 드린다’는 것은 내 자녀와 내 소유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유월절의 은혜, 구원의 은혜, 애굽의 고난에서, 세상의 고난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1절, 2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 말고,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 하시고, 불 가운데 지날 때 그 불이 우리를 타지 못하게 우리를 보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그 고난과 환란과 역경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는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소유가 바뀌는 것’입니다.

‘바로’의 소유, 세상의 사망과 사탄의 소유로 살았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소유’로 바뀌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받은 자로서, 이 죄악에서 풀려났다는 자유함은 기뻐하지만, 정작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다가 고난이 오면 “아!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이렇게 부르짖다가도 그 문제가 해결되고 걱정이 사라지면 우리는 또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내 삶이 내 것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로서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나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삶이 세상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선포하였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곧 당신들이 종살이하던 집에서 나온 이 날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거기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날이니, 누룩을 넣은 빵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이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시는 방법은 “그 날을 기억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고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유교병 대신에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음으로써, 그 불편함과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기억하라’고 말씀을 개역개정에는 ‘기념하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 이 뜻은 ‘생각하다, 상기하다, 기억하다’는 뜻인데, 이 ‘기억하다’라는 의미는 ‘은혜를 기억하는 것,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감사하며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가 교회의 봉사를 하는 것, 헌금을 하는 것, 그 모든 것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 5, 6, 7절’ 말씀입니다.

“첫째 달인 아빕월의 오늘 당신들이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에게 주신다고 맹세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당신들은 이 달에 다음과 같은 예식을 지키십시오. 당신들은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며, 이렛날에는 주님의 절기를 지키십시오. 이레 동안 당신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며, 당신들 영토 안에서 누룩을 넣은 빵이나 누룩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는 ‘무교절’에 대한 말씀으로, 그 ‘무교절’의 의미는 지난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그 날을 절기로 삼고 지키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절기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목적이지 이것이 우리의 삶의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적인 신앙, 감사가 없는 신앙의 형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8, 9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당신들은 당신들 아들딸들에게, ‘이 예식은, 내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고 설명하여 주십시오. 이 예식으로, 당신들의 손에 감은 표나 이마 위에 붙인 표와 같이, 당신들이 주님의 법을 늘 되새길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당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하십니까? 한 마디로 ‘말씀을 통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 감사와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 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새벽마다 단잠을 깨우고 일어나 하나님께 예배하며,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처럼, 새벽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함으로써 “주님! 오늘 이 하루도 살아갈 말씀 주시면 그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의 자리가 성도의 은혜의 삶에 중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규례를 해마다 정해진 때에 지켜야 합니다.”

‘이 규례를 해마다 지키라’는 것은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케 하는 방법은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복한다’는 의미는 ‘삶의 원칙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의 삶의 원칙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이 원칙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칙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상황에 따라 사는 삶이되고, 그냥 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휩쓸려 가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가는 인생이 아니라 거슬러 가는 인생입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힘들고 험해도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속에서 하나님의 소유로 그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또한 예스미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온전히 이뤄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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