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21. 출 10: 21-29, 여전히 포기 못하는 내 것이 있습니까?
2023.06.06 10:18
예수인교회
출 10: 21-29, 여전히 포기 못하는 내 것이 있습니까? 찬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우리가 살펴보는 ‘애굽’의 ‘10가지 재앙’은, 앞으로 일어날 ‘요한계시록’의 ‘7가지 재앙’의 예표와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애굽’의 ‘10가지 재앙’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지, ‘애굽의 백성’, ‘짐승의 표를 받은 자’로 살아갈 것인지를 분명히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4장 14절, 15절’을 보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십시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애굽과 세상의 백성으로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하다’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는 “예리한 칼로 쪼갠다”라는 의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즉 ‘예리한 칼로 쪼개고 자르듯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물질과 탐욕에 끌려 살면서, 형식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보면서 내 모습, 내 가정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로 서기 위한 선택과 결단을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10장을 보면,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의 재앙’과 오늘 보문인 ‘아홉 번째 재앙’ ‘흑암의 재앙’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아홉 번째’로 ‘흑암의 재앙’을 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10장 9절’ 말씀을 보면 ‘바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쁜’, ‘악한’이란 단어의 의미가 다양하게 번역이 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이집트의 태양신을 의미하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는 말씀은 “나의 태양신의 권능이 너희를 막고 있다”라고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바로가 이처럼 끝까지 자신의 고집, 교만을 꺾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 뒤에는 절대적인 태양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태양신이 절대 너희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교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태양을 가려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끝까지 붙잡고 있던 그 마지막 희망까지 철저히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내가 세상적으로 의지할 것이 있으면 절대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만이며, 고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지 않고는 절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애굽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붙잡고 있는 그 하나까지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지만, 바로의 교만의 시작이 어디서 시작됩니까?
바로 ‘내 것’이라는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리는 삶, 가정, 직장, 물질, 이것이 내 것으로 여기며 사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사는지 아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것이고, 내 것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면 압니다. 아무리 입술로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한다하더라도 그 삶의 모습이 나를 위한 삶이라면 그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그 태양마저도 가리시고 흑암을 만드심으로, 내가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의 참된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흑암이 있게 하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흑암’은 ‘자연적인 흑암’이 아닙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더듬어야 다닐 만큼 짙은 어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듬어야 다닐 만한 흑암’을 직역을 하면 ‘만져질 것 같은 흑암’이란 뜻입니다. 그 어둠이, 흑암이 얼마나 깊고, 어두웠던지 만져질 것 같은 칠흑보다 더 깊은 어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연적으로는 임할 수 없는 흑암과 어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고는 결코 임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면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바로가 모세를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는 가서 주께 예배하여라. 그러나 너희의 양과 소는 남겨 두고, 너희의 아이들만 데리고 가야 한다.”
이제는 ‘예배를 드리러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라는 인물은 참 ‘자기 것’에 대한 소유욕, 집착이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타협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면으로 보면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 타협안은 최선의 양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으로 이집트의 거의 대부분의 곡식과 식물과 가축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고센’ 땅의 곡식과 가축들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턱없이 부족했던 먹을 것을 위해 ‘양과 소만은 두고 가라’는 ‘바로’의 제안은 ‘바로’가 제시할 수 있었던 최선의 양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면 ‘모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짐승을 한 마리도 남겨 두지 않고 다 몰고 가겠습니다. 우리는 그것들 가운데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는, 우리가 어떤 것을 바쳐야 할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릴 희생 재물로 짐승의 종류와 수를 우리 마음대로 골라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는 아주 중요한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자세를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때문에,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고백의 의미는 ‘내가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물질관이며,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내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앞의 ‘복’이란 단어를 보면, 이 ‘복’의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받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뒤에 ‘부하게 하다’라는 단어 역시 ‘복’이란 단어인데, 이 뜻은 ‘내가 받은 복이 차고 넘쳐 주변으로 흘러가는 복’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복은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내 안에 가두고,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이 내 주변의 이웃들과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그 복이 더욱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의 삶과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성도의 삶의 모습이며, 그 백성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 삶과 형편이 나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행복의 초대에 참석한 VIP가 목장에 잘 정착하고,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