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20. 출 10: 1-20, 하나님의 말씀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2023.06.02 10:1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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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0: 1-20, 하나님의 말씀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찬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 백성을 징계함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이 생명과 같이 숭배했던 ‘나일 강’을 통해 심판하시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섬기던 ‘땅’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는 ‘하늘’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강과 땅과 하늘의 신들을 심판하시면서, 그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온 세상에 알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순종함으로써 겪는 일들이 반복됨으로써 이집트 백성들은 점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지만,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재앙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이 재앙의 사건들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 가거라. 그와 그 신하들이 고집을 부리게 한 것은 나다. 이것은 내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온갖 이적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어떻게 벌하였는지를,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어떤 이적을 보여 주었는지를, 네가 너의 자손에게도 알리게 하려고, 또 내가 주님임을 너희에게 가르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본문을 보면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완고해지는 일들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이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심이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들과 너희 자손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도 이 이적이 온전히 전해지게 하시기 위해 이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유월절의 절기를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억토록 한 하나님의 존재, 그다음에 그 하나님을 부정했을 때 생기는 결과,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했을 때 우리의 신앙이 얻게 될 것이 무엇인지를 이 ‘10가지 재앙’을 통해 뚜렷하게 학습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10가지 재앙’의 사건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문제인 것입니다.

세계에서 자녀교육이 가장 훌륭한 나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말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한국에서 ‘유대인의 자녀교육법’이 유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유대인의 자녀교육법’을 따라한다고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출발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유대인의 자녀교육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르치지만, 유대인들에게 이 방법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말씀 교육은 자녀들을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것을 뼈저리기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의 ‘쉐마의 말씀’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집에도 붙이고, 일하는 곳에도 붙이고, 목에도 걸며 묵상하고, 아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세상의 그 어떤 지식보다, 가장 먼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출애굽의 사건’, ‘10가지 재앙’의 사건, ‘유월절’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삶, 하나님을 떠나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아무리 성공해도 성공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10가지 재앙’의 사건을 보면서, “와! 하나님! 대단하다, 놀랍다, 한편의 영화 같다.”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감탄할 일이 아니라, 이 사건은 지금 내 삶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삶이며, 지금 내가 섬기는 삶의 헛된 우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3절’말씀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말하였다.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나의 백성을 보내서,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우리가 이 ‘10가지 재앙’의 사건을 보면서 한 가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바로’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가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인생의 문제와 해결 방법을 보게 됩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되돌려 주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것은 교만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만’과 ‘겸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지금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내 백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착각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는 가장 큰 교만은 그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모든 교만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 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알면 됩니다.

우리가 힘들어서, 형편이 어려워서, 못 배워서, 나이가 많아서, 질병가운데 있어서, 많이 갖지 못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이 ‘내 것’이라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내 가정, 내 재산, 내 사업장, 내 건강,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을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그 삶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내 삶이 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바로’처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느냐 죽느냐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더 이상 나를 의지하지 않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4절부터 6절’, 그리고 ‘11절부터 20절’에 말씀을 보면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이 나옵니다.

이것은 장관이 아닙니다. 끔직한 재앙입니다. 이미 우박으로 모든 농작물들이 죽었는데, ‘9장 22절’에 보면 그나마 남은 것들, 우박으로도 남아있던 것들이 ‘메뚜기 떼’가 덮쳐 남김없이 삼켜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7절, 8절’을 보면 드디어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반기를 듭니다.

‘바로’에게 “아니 지금 이집트가 망한 것을 모르십니까?” 신하들의 이 말은 지금 ‘바로’의 신적 권위가 이제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은, 결코 인간을 만든 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 삶에 내가 섬기고, 내 것이라 소중히 여기는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더 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뀌어야 할 대상은 우리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나는 바뀌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이 생각을 바꾸셔서 무조건 내 기도를 들어달라는 기도처럼 어리석은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하는 수 없이 ‘모세’와 ‘아론’을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말합니다. “좋다! 가라, 그런데 누구누구 갈래?” ‘바로’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나님과 협상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협상하고 타협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9절 이하에 보면 참 재밌는 장면이 나옵니다.

9절에 “모세가 대답하였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절기를 지켜야하므로, 어린 아이와 노인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가야하며, 우리의 양과 소도 몰고 가야합니다.”

‘모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면 그때 ‘바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가려면 너희 장정들이나 가서, 너희의 주에게 예배를 드려라. 너희가 처음부터 바란 것이 그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다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놓고 장정들만 가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인질로 잡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만 드리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너만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선은 ‘너만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가정과 삶에 너무 깊이 들어온 사탄의 유혹이며 협상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니까, 다른 가족은 괜찮다!’, ‘아내가 신앙생활 잘하니까, 괜찮다!’, ‘남편이 신앙생활 잘하니까, 괜찮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출애굽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교활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약 우리 가정의 구원받지 못한 가족이 있다면, 아직 그 믿음이 온전히 세워지지 못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부모가 있다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10가지 재앙을 묵상하면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살아도 죽은 인생이고, 성공해도 허무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내 삶에, 내 아내와 남편과 자녀와 부모와 형제 안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내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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