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18. 출 9: 1-12, 구경꾼입니까? 주인공입니까?
2023.05.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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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9장 1-12절 구경꾼입니까? 주인공입니까?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고린도전서 10:12-13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십하십시오.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말고는 여러분에게 덮친 시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는 가운데 신실하시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문자 그대로 넘어짐을 경험합니다. 넘어지게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눈길에 미끌어져서, 돌에 걸려서, 발을 잘못 디뎌서, 누군가에게 부딪쳐서 등 상황에 의해서 인간은 넘어짐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픔을 경험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넘어짐보다 더 큰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내 삶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제가 10대 후반일 때,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는 참사를 보았습니다. 20대에는
911 테러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9년이 지났는데,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참사들은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경험은 한 인간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 나이지리아 출신 치누아 아체베가 28세에 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한 인간의 삶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오콩코는 백인들이 자신의 종족인 이오족의 전통과 질서를 짓밟는 것으로만 보였고 침묵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겁쟁이처럼 굴지 맙시다. 어떤 녀석이 내 집에 와 똥을 쌌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눈을 감으면 되나요? 아닙니다! 몽둥이를 가져와 머리를 깨버려야지요. 그게 남자가 할 일입니다.” 소설에 보면 백인들이 교회를 세워 새로운 믿음을 전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이오족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오콩코는 백인 교회의 신도 한 사람이 자신들의 조상신에게 수모를 주자 부족 지도자들과 함께 교회를 불태우고, 치안 판사가 보낸 전령을 죽입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오콩코는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고 맙니다.
바로도 오콩코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이집트인들의 집짐승들이 다 죽었을 때에도 그리고 자신의 마술사들을 포함한 모든 이집트 사람들에게 악성 종기가 생겼을 때에도 바로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기로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재앙이 일어났을 때 이집트 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의 아우성이 그리고 울부짖음을 저는 상상하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의 집짐승들은 살아있음을 보았을 때에 그들은 공포심도 느끼지 않았을까요? 민란이 일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여전히 자신의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여전히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서 지도자 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우리는 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하기 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구합니다. 의인 열명이 있으면 그 땅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인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의로운 지도자라고 해석이 되는 것을 보면 의로운 지도자의 존재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는 이집트인들의 소리에 바로가 귀를 기울였다면 일의 진행이 혹시 달라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요? 순전히 제 상상이지만 바로는 이집트사람들의 집짐승이 죽은 후에도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보내서 이스라엘 사람의 집짐승이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제 눈에는 바로의 무책임함과 일어난 일들에서 그가 구경꾼의 위치에 머물러 있음이 보입니다.
제가 철학을 공부하다보니, 20세기 독일 철학자 한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유대계 독일인 한스 블루멘베르크입니다. 그가 쓴 책들 중에 난파선과 구경꾼이란 책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항해와 구경꾼이란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휴가 때 크루즈 여행을 즐기시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크루즈 여행의 매력을 그 분들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경제적이면서 즐거운 여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항해의 역사는 무구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생각해보면 항해의 역사가 얼마나 오랜 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운송 수단으로 등장한 시기를 생각해보면 항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난파의 역사도 아주 긴 역사를 갖습니다.
제가 아는 후배 한 명은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사고가 나서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 후배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배를 아예 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난파를 당하는 경험은 생사를 결정짓습니다.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대지 위에서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구경꾼은 남의 불행을 보고 ‘나는 지금 안전하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함을 지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로에게도 악성 종기가 생겼는지 여부에 대해서 저는 확실하게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바로에게도 악성 종기가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바로에게 악성 종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바로는 대지에서 난파선을 관객처럼 바라보는 구경꾼처럼 왕궁에서 나는 지금 안전하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을 하게 되진 않았을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수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일들은 반복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읽고) 듣습니다. 그 가운데 말씀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납니다.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를 체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물론 바로도 이집트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그리고 경험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져 갔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재앙들로 인해 원망, 불평, 그리고 고통 가운데 남아 있었을 것이고요. 바로는 여전히 마음을 굳게 하고 고집을 꺾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은 구경꾼으로 살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믿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주인공이 되시겠습니까?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의 집짐승은 다 죽었지만 자신들의 집짐승은 다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모습이 어땠을까 떠올려보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기도하며 예배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교육부, 유스, 청년부의 부흥과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꿈을 꾸는 이들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