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17. 출 8: 16-32,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다.

2023.05.30 10:2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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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8: 16-32,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다. 찬 325장(예수가 함께 계시니)

‘출애굽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들어내시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별하시고, 그 백성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특히 ‘10가지 재앙’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바로의 백성을 명확히 구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또한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섬기는 우상을 하나하나 심판하시면서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백성에게만이 참된 구원을 은혜가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럼 16절부터 19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에게 일러, 지팡이를 내밀어 땅의 먼지를 치라고 하여라. 그러면 이집트 온 땅에서 먼지가 이로 변할 것이다.”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서 팔을 내밀어 땅의 먼지를 치니, 먼지가 이로 변하여, 사람과 짐승들에게 이가 생겼다. 온 이집트 땅의 먼지가 모두 이로 변하였다. 마술사들도 이와 같이 하여, 자기들의 술법으로 이가 생기게 하려고 하였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가 사람과 짐승에게 계속하여 번져 나갔다.”

마술사들이 바로에게 그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세 번째 재앙은 ‘이’재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재앙은 ‘땅의 먼지’에서 시작됩니다. 히브리어에는 ‘땅’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가 3가지가 있는데, 본문에서 앞의 나오는 ‘땅’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하늘과 땅’이라고 하실 때의 ‘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먼지’는 ‘메마른 땅’이란 의미로, ‘흙먼지, 띠끌’이라고도 번역을 합니다.

그러데 이 ‘먼지’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을 때, 이 ‘흙’이 바로 오늘 본문의 ‘먼지’입니다. 바로 인간의 근본적인 재료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9절’을 보면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흙’이 바로 ‘먼지’, ‘띠끌’입니다.

그런데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에 ‘하나님이 생기’가 들어가니까, 그 보잘 것 없는 먼지가 천하보다 귀하고,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명예와 부귀를 누리며 산다할지라도, 그 삶에 하나님이 없는 삶, 예배하는 삶이 없다면 그 삶의 결국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먼지와 같고, 띠끌과 같은 허무한 삶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으로 ‘땅’의 것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땅의 신 ‘게브’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얻는 곡식과 소산으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 그 땅에서 얻는 것으로 풍요를 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소산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니라, 그 땅 자체를 신성시하고 신으로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재앙과 두 번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세 번째 재앙을 통해 그들이 삶의 모든 풍요와 축복을 상징했던 땅에 대한 우상을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던 그 ‘먼지’를 날려 ‘이’를 만드셨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이’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 성경은 ‘이’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성경에는 ‘모기’라고 번역을 했고, 또 ‘각다귀’라고도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던 땅이 그들을 괴롭히는 재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앙은 ‘바로’의 마술사들이 따라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점차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19절에 보면 “마술사들이 바로에게 그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신의 권능’이란 말의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신의 손가락”라고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손가락’이란 의미는 ‘능력’과 ‘권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보다 자신들의 신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이 더 큰 권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바로는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절 21절에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재앙인 ‘파리 떼’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리’라는 것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원문에는 이 단어가 ‘무리’라는 뜻으로 어떤 곤충인지 정확히 말씀하지 않지만, 사람들을 해롭게 했던 파리와 같은 해충의 무리 떼였습니다.

그런데 이 재앙의 결과를 24절에 보면 ‘그 땅이 파리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던 땅이 하나님의 손앞에서 폐허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폐허가 되었다’는 뜻은 ‘멸망시키다, 부패하다, 괴롭히다’라는 뜻입니다. 즉 이집트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모든 부귀와 행복을 주는 신으로 섬기던 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 오히려 그 땅이 폐허가 되고, 괴로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없는 삶의 헛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2절, 23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에 나는, 나의 백성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보내지 않아서,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나 주가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을 구별할 것이니, 이런 이적이 내일 일어날 것이다’ 하여라.”

여기서 하나님은 구별하는 일을 하십니다. ‘고센’ 땅과 나머지 지역을 구별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백성과 거부하는 백성을 구별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택한 백성의 거주지인 그 ‘고센’ 땅을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모습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과 애굽의 백성들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때 ‘바로’는 멋진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25절입니다. “그러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이제 너희는 가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을 예배하라! 그러나 이집트를 떠나지 말고 이 땅에서 예배하라!” “하나님께 예배는 해라. 그러나 하나님도 잘 섬기고, ‘바로’, ‘세상’도 잘 섬기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 작전이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는 사탄의 작전입니다. ‘예수는 믿어라. 그러나 네 삶의 중심은 세상에 말뚝을 박아놓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혹에 넘어간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삶이 세상에 박힌 말뚝 같아서 언제나 세상 중심의 삶을 살며, 그 주변을 맴돌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돈도 좋고, 믿음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바로’의 유혹에 26절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로’는 또 두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28절입니다. “바로가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너희를 내보내서, 너희가 광야에서 주 너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너무 멀리는 나가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는 내가 하는 일도 잘 되도록 기도하여라.”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자의 방법입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묶어두려고 합니다.

“예수는 믿어라. 그러나 너무 유별나게 믿지는 말아라.” “신앙생활 해라. 그러나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말씀을 듣고 은혜는 받아라. 그러나 그 말씀이 너의 삶에 실천하지는 말아라.” 이것이 사단의 유혹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이렇게 유혹하고 타협을 말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라.”

“광야로 멀리가면 너는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다.”

“내 안에 머물러야 먹을 것도 주고, 집도 주고, 옷도 입혀 주는 거다. 광야에 나가면 어떻게 살 수 있느냐? 광야에서 예배만 드리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예배만 드리고 빨리 내게 돌아와라”

그러므로 이 세상의 유혹 앞에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구별된 백성,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포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삶속에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욥기 14장 4절’에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땅 가운데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오늘 본문의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의 명령에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왜 사흘 길을 가서 광야에서 예배를 드립니까?”가 아니라 “어떻게 사흘 길을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가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내 삶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행복의 초대에 참석한 VIP가 목장에 잘 정착하고,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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