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14. 출애굽기 7:1-10 모세와 아론처럼
2023.05.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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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1-13 모세와 아론처럼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알렉산더 제왕, 나폴레옹, 카이사르 등등, 우리는 위대한 왕들의 이름들을 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이룬 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들이 지닌 절대적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처럼 기원전 1290-1224년에 활동한 것이 확실시 되는 애굽의 왕 바로가 등장합니다. 그의 또다른 이름은 람세스 2세입니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그의 장편 소설 람세스에서 다루는 인물이 바로 람세스 2세입니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신왕국 제 19왕조 제 3대 파라오였습니다. 검색해보니 그가 이집트를 다스리는 동안 리비아, 누비아, 그리고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장 1-13절은 그러한 왕 바로 앞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준행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Moses)의 이름도 영어 단어로 보면 람세스(Ramses)처럼 ses로 끝이 납니다. 애굽식 이름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10절에서는 히브리말로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지만 애굽 말에서 모세의 이름은 아이, 아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름의 뜻처럼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애굽의 아들로 자라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1939년에 모세와 유일신교라는 책에서 모세를 이집트 귀족 출신이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주장 때문에 이 책은 출간 이후에 많은 대중들에게 충격이었고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람세스 2세)와 모세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명한 바를 바로 앞에서 전하고 표징과 이적을 행할 때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절대적 권력을 가진 바로 왕이 저 두 사람을 죽여라 명령하면 그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힘을 가진 바로 앞에 모세와 아론이 나아간 것입니다. 두려움, 떨림, 공포심이 그들 마음에 없었을까요? 분명히 그들 마음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7장 6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 일을 봅니다. 말씀을 통해 그 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경험은 모든 인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얻기 때문입니다. 직접 보는 것이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개념이 직관의 이해로부터 나온다고 봅니다. 객체가 우리한테 감성을 통해 주어지고, 그것만으로 인간은 직관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칸트에 의하면 직관은 개념이 형성되는 원재료라는 것입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저는 운동 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축구장, 야구장, 그리고 농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면 텔레비젼에서 경기를 볼 때와 가장 큰 차이를 경험합니다. 경기장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선수들 전원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라운드에 가까운 곳에서 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숨소리 그리고 땀 한 방울까지도 볼 수 있고요. 직접 관람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 그 경험은 매우 주관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이러한 주관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 경험이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또한 말씀 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그 결과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성품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표징과 이적을 행하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로 오늘 본문에서 아론이 지팡이를 던졌을 때 그것이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시작될 일의 예에 지나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바를 행하고 계심을 그들이 직관하고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예수인으로서 오늘 내가 직관하고 경험하길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초대가 4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행복의 초대와 관련해서 나는 무엇을 직관하고 경험하고 싶은가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가면서 앞으로 우리들이 보게 될 텐데,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장자를 잃기 전까지 마음의 완고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 바로를 봅니다. VIP 초대를 위해 노력할 때 우리들이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게 되진 않습니까?
모세는 6장 12절에서 주님께 이렇게 고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저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대화를 할 때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 말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아이고 속 터져 아닐까요? 모세도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어서 자신은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그를 대신할 메신저로 보내주셨고 두 사람은 바로 앞에 나아갑니다.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른다는 모세의 말은 그의 삶의 여정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한국으로 유학 온 인도 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어가 정말 유창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가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운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분명히 인도 사람인데 말 할 때 마다 부산 말을 찰 지게해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세도 애굽의 왕자로 살면서 애굽 말에 능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디안에서 40년을 살면서 애굽 말을 모두 잊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방송에서 전라도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 온 미국인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비례해서인지 영어로 말을 하다가 영어 까먹었어요라고 하면서 한국말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 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우리가 영향을 받는 부분일 것입니다. 행복의 초대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입을 통해 말해지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모세처럼 그리고 아론처럼 그 일을 해 내가는 일의 중요함을 오늘 말씀에서 저는 깨닫습니다. 우리 삶의 상황과 환경은 변화 무쌍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들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곳으로 나아가며 그 뜻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 시간과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가며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목도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주인공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제목: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쓰임 받는 예수인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수: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행복의 초대를 통해 학생들의 믿음 성장과 각 부서의 성장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