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12. 출 6: 1-9, 나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23.05.19 11:29

예수인교회

조회 수316

출 6: 1-9, 나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찬 364장(내 기도하는 그 시간)

‘출애굽기 6장’은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명의 길이 분명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데, 그 여정이 순탄치 않습니다. 심지어 ‘4장’을 보면, 사명을 주시고 ‘가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할례’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하라”고 말씀하시고 ‘모세’가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어떤 일이 버러집니까? ‘바로’는 도리어 더 완고하게 되고, 문제가 더 커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이 더 심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이 더 심해지자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 고난이 ‘바로’의 명령으로 닥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바로’에게 가서 호소를 합니다.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데, 세상에 가서 그것을 호소를 합니다.

그런데 ‘5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저주를 하면서 ‘모세’와 ‘아론’ 또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모세’와 ‘아론’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나갑니다.

‘5장 2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주님께 돌아와서 호소하였다.”

이것이 믿지 않는 백성과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의 차이입니다.

믿지 않는 백성들은 세상 때문에 힘든데 세상에 가서 호소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은 그 순간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께 탄원합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말도 해도 ‘누구한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에게 하느냐, 바로에게 하느냐, 돈에게 하느냐’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 ‘모세’가 하나님께 뭐라고 호소를 합니까? ‘5장 22절, 23절’에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이렇게 괴로움을 겪게 하십니까? 정말,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는, 그가 이 백성을 더욱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십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 이스라엘 백성이 겪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께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직설적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숨지기 않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호소합니다. 안 믿어지는데 일부러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 현실을, 내 상황을, 내 마음과 형편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겁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만 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니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또 오늘 ‘모세’의 간구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꾸밈이 없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믿어지는 대로, 또 때로는 힘들면 힘든 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기도에 오늘 본문 ‘6장’에서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시거나,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본문 2절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모세의 문제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어떤 능력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행하시지 않고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잘못된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인가 행하셔야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 내 질병이 치료되는 것, 내 가정과 사업과 직장과 학교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는 것, 이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행동’이 아니라 ‘말씀’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응답입니다.

“나는 ‘주’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즉 ‘나는 이런 존재다.’ ‘내가 누구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응답이 되겠습니까?

다음 주부터 살펴볼 7장부터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시는 10가지 재앙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10가지 재앙이 일어나고, 그보다 더한 재앙이 닥쳐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하시는지 모르면 그 재앙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 해도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그 문제가 온전히 응답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간구의 응답의 시작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곧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강제노동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행하시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알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는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는 ‘엘 사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샤다이’는 단어의 뜻은 ‘어머니의 젖가슴’이란 의미를 가자고 있습니다. 즉 아이를 품은 어머니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키우시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샤다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충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엘 사다이’는 ‘충분하신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충분은 조건적인 충분이 아니라 절대적인 충분인 것입니다. 이것이 ‘엘 샤다이’입니다.

그런데 이제 ‘출애굽’을 이끄시는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 뜻은 직역을 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다”라는 뜻이며, 이 여호와라는 의미 안에는 “나는 너희를 위하여 현존한다, 활동한다, 일을 행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나는 ‘여호와’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행하실까요?

그 이유가 ‘4절, 8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또한, 그들이 한동안 나그네로 몸붙여 살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을 세웠는데,” 8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나는 ‘주‘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기 위해 출애굽을 시키십니까? 그들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맺으신 언약 때문에 지금 그 언약을 지키시는 것이 바로 출애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 나는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단어는 ‘말하다’라는 뜻과 ‘새기다’라는 뜻입니다. 즉 ‘생각한다’는 하나님께서 그 하신 말씀을 돌 판에 새기듯 그 마음 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각하다’의 또 다른 의미는 ‘행동하다, 실천하다, 이룬다’는 뜻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언약 가운데 있는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의 백성답게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의 출애굽을 하는 축복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내 삶에 모든 문제 가운데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하시고, 나를 위해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