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10. 출애굽기 4:21-31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3.05.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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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21-31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5월 17일 새벽 예마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반갑게 인사하겠습니다. 비상이 약속된 땅으로 나아갑시다.

오늘 하루 비상이 약속된 땅으로 나아가시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 온 지 어느덧 약 13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미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그 표현은 현재 맞지 않는 표현일 수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미국은 약속의 땅 그리고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워낙 큰 나라라 동부가 다르고 남부가 다릅니다.                 

서부가 다르고 중부 지역이 다릅니다. 시차도 존재하고, 기후가 다르고 생활 환경이나 지역적 특성이 다 다릅니다.

각 지역마다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성향도 다릅니다. 그러한 국가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세를 자주 만납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늘 서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늘 서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기 때문에 모세에게는 그것이 숙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 때문에 모세는 살기 위해 이집트에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쳤었는데 이제 다시 이집트 땅으로 아내와 아들들과

함께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모세는 이집트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모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모세의 마음에 근심이나 염려가 전혀 없었을까요? 모세에게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에 들어서는 모세의 모습은 우리가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말 재주가 없고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며 그래서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모세는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굽인을 죽였던 혈기 왕성하고 독립 투사와 같았던                                               

모세의 모습은 이제 그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지도자로 부르시고 보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형 제사장 아론을 그를 대신할 메신저로 지명하시고 그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4장 21절에서 우리는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봅니다. “내가 너에게 이적을 행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는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바로의 앞에서 그 모든 이적을 나타내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내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게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이 맏아들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만들지 않으셔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는 것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습니다. 바로는 이집트의 왕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왕이 어느 날 모세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노예 전부를 놓아주겠습니까? 상식적으로 그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왕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 왕의 마음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지금 이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생각하면서 그 마음이 더욱 완고해지지 않았을까요?  바로는 나는 절대 이 노예들을 놓아주거나 보내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제 전공 교수님 중 한 분은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그 후에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 교수님께서 철학을 공부하시면서 독일 철학자 헤겔을 전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으로부터 헤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에 대해 자의식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주인의 자의식과 노예의 자의식에 근거해 이해합니다. 헤겔은 자신에 대한 이해에는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두 개의 의식은 따라서 스스로만으로는 아무 의미와 기능이 없으며, 상대의 현존을 통해서만 유효하게 작동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의식이란 인간 존재의 정수가 아니며, 다른 외적 존재로부터 새겨지는 것이라고 헤겔은 주장합니다.

때문에 헤겔은 서로 마주보는 두 존재는 서로 의지하는 상호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며 두 자의식은 서로를 거울삼아 ‘투쟁하며’ 발전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인-노예 관계에서 이러한 투쟁은 생사를 건 투쟁으로 이해됩니다.

주인과 노예에 대한 헤겔의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바로 왕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나오는 과정에서 이집트의 수 많은 장자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22절과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려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생사를 건 투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준 후에도 바로 왕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갑니다. 왕인 바로에게 노예인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는 것은 맏아들을 잃어버린 후에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생활을 그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을 출애굽기를 통해 봅니다.

오늘 분문 후반부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아론을 하나님의 산에서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적을 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와 달리 모세와 아론을 믿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3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굽어 살피시고, 노예였던 자신들이 고통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음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엎드려 주께 경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일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백인들의 권력과 흑인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린칭 트리를 통해서 저는 미국 역사에 기록된 흑인들의 삶의 어두운 면을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테일러, 알버리, 그리고 플로이드가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일어났었던  엘에이 폭동 사건도 흑인 로드니 킹 사건이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면서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도 이런 역사로 인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5년전에 세상을 떠난 흑인 해방 신학자 제임스 콘도 린칭 트리를 아프리칸   어메리칸 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비록 미국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위와 같은 처참하고 비극적인 일들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인간에게 수고하며 땀을 흘려야 하는 운명이 주어졌고 여성들에게는 해산의 고통도 더해졌습니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다치며 우리는 마음과 몸에 큰 아픔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길 그리고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13살 때 제 왼쪽 발목에 실금이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발이 다치면 늘 왼발이었습니다. 8년 전 운동하다가 왼쪽 발을 크게 다쳤습니다.

왼쪽 발목이 왼쪽으로 꺾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였습니다. 두두둑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제 귀에 들렸습니다. 엄청 고통스러웠고  6주 넘게 고생을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뼈에 아무 이상이 없었고 인대에도 아무 손상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생각이 나면서 31절의 말씀이 제게 큰 은혜가 됩니다. 그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 살피시고,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것을 듣고 엎드려 주께 경배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 살피시고 이스라엘 자손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굽어 살피시고 우리가 고통 받을 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 만을 섬기리.  이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예수인들이 되길 원합니다. 고통 가운데 계시며 그래서 우리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을 통해 위로를 얻고 그 사랑에 힘을 얻고 영원히 주님 만을 섬기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제목: 비상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예수인들이 되길 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기억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예수인들이 되도록

중보제목: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 행복의 초대를 통해 교육부의 부흥과 성장이 일어나도록 & Youth Fun Day 행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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