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9. 출 4: 10-20, 그러니 가야 합니다.

2023.05.16 10:25

예수인교회

조회 수392

출 4: 10-20, 그러니 가야 합니다. 찬 442장(저 장미꽃 위에 이슬)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네 번째, 다섯 번째로 거부를 하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장, 4장’에서 끝임 없이 실패의 아픈 경험과 초라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감을 고백하며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을 보면 ‘모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의 거절의 모습을 보면, ‘모세’는 진심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라고 번역한 단어는 ‘아도나이’라는 단어인데,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의미 안에는 ‘간절함의 부르짖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모세’는 단순히 그 부르심을 감당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현실과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의 처지에서는 도저히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거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의 말에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11절, 12절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이를 만들고 듣지 못하는 이를 만들며, 누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거나 앞 못 보는 사람이 되게 하느냐? 바로 나 주가 아니더냐? 그러니 가거라. 네가 말하는 것을 내가 돕겠다. 네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이 뜻은 “그 근원이 누구냐?, 그것의 주인이 누가냐?, 그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저는 힘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주님은 “그 힘의 근원이 누구냐?”라고 다시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물질이 없습니다.” 그럼 “그 물질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건강이 없습니다.” 그럼 “그 생명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믿으라’는 것입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상황을 보지 말고, 조건을 따지지 말고,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그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연약한 입을 하나님이 붙드시니까 어떻게 됩니까?

‘신명기서’에 가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는데, 그 말에 권세와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멘’으로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 부족한 것도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쓰시기로 결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내 상황과 환경과 형편과 지식과 건강과 나이가 아니라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내 능력에 그 일의 성패가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그러나 가거라”고 말씀하는데, 이 뜻은 ‘지금 당장 가라, 망설이지 말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숨겨진 놀라운 의미는 여기서 ‘가라’는 단어의 의미는 ‘발자국을 따라 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장서 가시니, ‘그 발자국을 따라가 가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엑소도스)’의 뜻은 “나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길 원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네가 걸었던 실패의 길, 절망의 길, 세상의 길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너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 비상의 땅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3절을 보면 ‘모세’는 다섯 번째로 이렇게 또 말합니다.

“모세가 머뭇거리며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이것은 “하나님!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제 능력과 형편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본문 17절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그리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하여라” 그리고 본문 20절에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시간 ‘모세’의 지팡이의 의미를 살펴보았지만, 지팡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지팡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특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 실패의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기적의 지팡이,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평범하고 낡은 지팡이, 어쩌면 초라하고 실패의 삶을 상징하던 그 지팡이가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과 소명의 순종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모세’가 드디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 순종의 길을 떠나는 그 순간, 자신의 할 수 없다는 실패의 길을 떠나 하나님의 길을 걷는 그 순간, 그 실패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 비상의 땅을 소망하는 성도는 나의 가정에서, 나의 직장과 사업장,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나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직장과 사업장, 물질, 건강, 사람들과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그 문제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사명을 반드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사명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 옮길 때 우리의 그 연약한 삶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나의 삶의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5월 행사) 5월 26일 ‘유스 Fun Day!’, 5월 28일 ‘행복의 초대’를 통해 우리 주변의 영혼 구원의 사명을 이루게 하소서.또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VIP를 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