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8. 출 4: 1-9, 내 삶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2023.05.12 10:33
예수인교회
출 4: 1-9, 내 삶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찬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장의 말씀은 3장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3장에서 그랬듯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계속해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못합니다.”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모세’는 또 이렇게 거절을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저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님께서는 너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하면 어찌합니까?”라며 자신의 실패의 삶, 지금의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믿지 않을거라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본문 2절에 이렇게 물으십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대답하였다.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는 광야 생활 내내 ‘모세’의 손에 들려있던 그냥 평범한 지팡이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며, 때로는 그 지팡이로 양을 지키고, 또 자신이 의지했던 지팡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가 나중에 무슨 지팡이가 됩니까?
본문 17절에 보면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그리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하여라.”고 말씀하시고, 20절에 보면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평범한 지팡이가 “이적을 행하는 지팡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이라는 평범한 목동의 삶, 목동으로서의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이 없었다면, 그에게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기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항상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일, 매일 매일 반복되는 그 삶이, 그것이 하나님의 지팡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이며 일하시는 스타일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늘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던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 평범한 낡은 지팡이가 새로운 사명과 소명의 출발지에서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과 소명을 품고 우리의 삶의 자리로 나갈 때, 바로 그 순간 그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문제는 환경이나 건강이나 물질이 아니라 사명이 없는 삶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라할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어쩌면 어제와 다를 바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힘들고 고된 삶의 변화가 없는 삶이라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삶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꿔나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오늘의 삶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부터 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물론 이 뱀의 의미를 성경학자마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 뱀이 이집트의 왕 ‘바로’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집트의 왕의 상징은 코브라, 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집트 왕의 ‘미라’를 보면 그 왕관의 모양이 코브라, 뱀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적의 의미는 “네가 바로의 꼬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가 돌아서서 너를 물겠지만 너는 바로를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6절부터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품에 넣었다 빼어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의 손이 하얗게 ‘악성 피부병’, 개역 개정은 ‘문둥병’이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손을 품에 넣었다 빼어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의 손이 다시 이전처럼 깨끗하여졌습니다. 둥병은 당시로서는 가장 더러운 병입니다. 더구나 성경을 보면 이 문둥병자들은 스스로 사람들 앞에 “부정하다”를 외쳐야 하는 마음의 고통의 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문둥병을 ‘고친다’라고 하지 않고, ‘깨끗케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깨끗케 하는 은혜를 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문 6절, 7절에서 ‘품’이란 단어는 “둘러싸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은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의 의미는 이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품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오염된 우상숭배와 죄악의 병으로부터 깨끗해하시고 이제는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그 품안에서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세 번째로 두 이적을 다 믿지 아니할 때에 나일강을 퍼서 마른 땅에 놓으면 강물이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적은 이집트 땅에 직접 해를 주는 이적은 아닙니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이적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적은 이집트에 직접 해를 주는 이적입니다. 하나님의 이적의 궁극적 목적은 이집트를 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이스라엘로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믿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그것은 1절에 ‘믿지 않고’, 5절 ‘믿을 것이다.’ 또 8절 ‘믿지 않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9절 믿지 않으면’이란 말씀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이 세 가지 표적에서 중요한 핵심은 바로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적의 핵심은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내 삶이 보잘 것 없는 지팡이, 모세와 같이 실패의 지팡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것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삶의 자리로 나갈 때 우리의 그 낡고 초라하고 고통과 문제의 삶의 지팡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 삶에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지팡이 같은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