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4. 출 2: 11-25, 비상의 땅을 향한 하나님의 퍼즐

2023.05.05 11:3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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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 11-25, 비상의 땅을 향한 하나님의 퍼즐, 찬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인생은 퍼즐과 같습니다. 수많은 조각 중에 작은 한 조각이라도 없어지면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조각들 중에 필요 없고 중요하지 않는 순간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의 퍼즐 조각이 화려한 성공의 순간 일수도 있고 반대로 실패의 조각, 고통의 조각일 수 있지만, 그 조각들이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모든 조각들이 내 인생의 그림에 중요한 조각임을 깨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난의 순간, 어려움의 순간의 퍼즐을 지나고 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내 인생의 그림은 놀라운 축복이며, 은혜이며,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격언에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고난이 아닌데, 우리가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하니까, 그것이 내 인생의 어떤 그림의 퍼즐 조각인지 알지 못하게 때문에 그것을 ‘고난’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고난의 이유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나가시는 은혜의 퍼즐 조각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고난이 결국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길로 갈 때, 비록 그 과정이 고난이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약속의 성취가 이뤄지는 것이었으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왕궁 바깥으로 나가 동족에게로 갔다가,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그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여기서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이 때의 모세의 나이가 40세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이미 20살 정도 넘으면, 적어도 30살이 넘으면 어른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40세가 되어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단순히 나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개역개정 성경은 ‘장성하다’라고 해석했는데, 이 뜻은 “성장하다, 강해지다, 누군가를 책임질 힘을 갖다”라는 뜻입니다.

즉 단순히 나이가 들고, 체격이 커서 어른이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모습을 갖출 때 그것을 ‘장성했다’고 말하고, ‘어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나밖에 모르지만, 어른은 남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3절’을 보면 당시의 모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이것이 ‘장성했다’는 뜻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성숙해지면 남들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사명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아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할 사명이구나,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영혼이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른과 같은 신앙의 성도를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모세가 자신의 동족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의 감독에게 매를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이집트 감독을 죽이게 됩니다.

이 부분을 원어 성경을 보면 쉽게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원수를 원수로 갚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미움이나 다툼이나 복수와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권입니다. 자녀를 축복하고, 아내와 남편을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축복의 말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기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에게 절대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모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그 원수를 갚다가 결국에는 광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광야가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나가시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고난의 시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길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으로 걸어가는 시작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이 ‘광야’라는 뜻을 보면, 이 단어는 ‘묵상하다, 생각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광야는 단순한 고통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리입니다. 이 ‘고난’이라는 나의 인생의 작은 퍼즐 조각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그림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을 향해 다시 일어서는 곳이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부터 25절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이스라엘의 고난을 더 깊어지고, 모세 또한 고난의 광야에 머물러 더 이상 출애굽을 생각조차 못할 그 깊은 절망의 순간, 오늘 본문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절망의 순간 마치 하나님께서 주인공처럼, 주관자처럼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지금 나의 삶의 작은 고난의 조각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주님을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말씀을 붙들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주일(7일) 교육부 “Oh! Happy Day” 전도축제에 많은 아이들이 참석하여 즐겁고 행복하며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도록,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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