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35. 고전 15: 29~34.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023.04.20 10:09
예수인교회
고전 15: 29~34.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성도. 찬 235장(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믿음의 성도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은 또 다른 영원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9절, 3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죄악된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지 못한다면 이 세례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2절에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할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하면 내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어려운 인생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사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고 가치 없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 멀지 않아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 먹고 마시고 마음대로 살자!”하는 그런 인생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9절을 원어 성경으로 보면, 이 문장은 ‘강한 부정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뜻은 바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자의 부활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1절에 ‘사도바울’은 강력한 어투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말씀은 ‘부활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 자신은 날마다 죽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왜 믿음의 성도들에게 자신처럼 날마다 죽는 삶을 살라고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겠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7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12장 24절’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8장 34절’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 뜻대로 일이 풀리고 계획했던 대로 일이 되면 그것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과 계획이 주님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우리의 세상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말씀대로 살기 위해 어려움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한다 할지라도, 영원한 천국의 부활과 상급을 소망하면서, 날마다 자신의 정욕과 욕심과 분냄과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잠시 살다가 떠날 이 세상의 유익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삶을 소망하면서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의 성도가 이런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사탄에 속한 세상의 물질과 정욕과 욕망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3절, 3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쁜’이란 뜻은 ‘죄악된, 악한’이란 뜻과 함께 ‘파멸’이란 뜻이 있고, ‘동무들’이란 ‘교제하다, 친교를 나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다’는 뜻은 ‘미혹하다, 길을 잃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 말라’는 뜻은 ‘우리에게 부활이 없고, 영원한 천국을 마치 먼 미래의 일처럼 우리를 미혹하고 복음에서 벗어나 길을 잃게 만들어 사탄의 파멸의 세력들에게 넘어가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때를 위해 날마다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의 어느 마지막 한 순간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매일의 삶을 주님 안에서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요한일서 2장 25절’에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는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부활의 영광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의 정욕과 욕심과 미움과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 안에서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와 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