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31. 고전 14: 1-25. 우리는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3.04.13 11:1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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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4: 1-25. 우리는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찬 197장(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내 능력보다 크고,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할 때, 우리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계획이며 영적으로 깨어있는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령의 강력한 은사는 갈망도 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드시 분별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령의 역사에는 악한 영의 미혹도 많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굉장히 강하게 일어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는 영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영적인 강력한 은사도 성도에게 필요하지만 그것을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 안에 일어났던 영적인 혼란이 일어났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방언’ 문제였습니다. ‘방언’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또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이렇게 방언하는 은사를 사모하고,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공적인 예배를 드릴 때도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송하는 일을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방언은 그 방언 기도를 하는 성도에게는 영적으로 유익하지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열매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절제 없이 공적인 예배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송하며, 예배의 진행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께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은 개인적인 기도를 할 때만 하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방언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19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은 방언으로 일만 마디를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서 예배드릴 때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섯 마디 하기를 더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는데, 이 뜻은 ‘미래의 일을 점치는 예언’의 의미가 아닙니다. 본질적인 그 뜻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예언의 의미는 ‘말씀을 대언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때에는 예배를 통해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예언의 은사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한 이유는 “예배 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알 수 없는 방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많은 성도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예언의 은사는 반드시 두 가지 분별을 통해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공동체를 통해 분별해야 하고, 또 하나는 성경을 통해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도 잘못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직업적으로 예언을 하는 사람들, 마치 예언 기도를 해주고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이익을 챙기거나, 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의 미래를 예언하거나, 예언을 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허물어뜨리는 일, 목회자의 분별도 받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하나님이 내개 주신 말씀이니까 누구도 나에게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다’며 영적으로 교만해지는 사람, 그것은 단언컨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악한 영의 미혹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 그 의미를 깨닫고, 목회자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사모하며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며, 모든 은사의 결론은 사랑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린도전서 14장의 말씀을 보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에게 성령의 은사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은사를 말하면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과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교회와 성도의 신앙생활에 반드시 강력히 역사해야 하는데, ‘고린도교회’는 그 은사들을 잘못 사용하여 교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했기에 그것을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예배당 건물도 없었고, 목사도 없었고, 심지어 성경책도 없었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 이제 막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제 시작된 그때니까 그랬던 교회였습니다. 핍박도 심했고, 이단도 많이 일어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더 부흥되고, 수많은 사람이 전도되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가 없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단의 무리들도 일어납니다. 또 아주 세속의 물결도 얼마나 거세게 우리를 휩쓸어 가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소식들이 끝임 없이 들려옵니다. 습관적인 죄, 은밀한 죄를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반드시 삶속에서 인식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가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살면 마음에 성령의 근심이 느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소원이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이런 마음이 내 속에 있고, 어떻든지 그 사람이 예수 믿게 해야 될 텐데, 그 사람 전도해야 될 텐데, 가족이나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이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는 점점 더 강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바라보며, 항상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목장과 교회의 삶속에서 성령충만이 함께 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내게 있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와 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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