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29. 고전 13: 1~7.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2023.04.11 10:58
예수인교회
고전 13: 1~7.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찬 304장(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바울’은 수많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일어나고, 또 물질의 풍요가운데서 부족함 없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충만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모든 말(방안)과 천사의 말은 영적인 은혜와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영적인 것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징과 꽹과리는 당시 고린도지역에서 사람들이 우상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춤추고 소리를 지를 때 사용되었던 악기들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우상의 재물로 사용된 고기를 먹는 문제에서 살펴보았듯이 우상은 단지 쇠덩어리, 돌덩어리에 불과한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앞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크게 치는 것 또한 그냥 요란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영적인 삶을 사는 성도 또한 사랑이 없으면, 그가 하는 방언이나 복음의 말씀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은사들은 당시 ‘고린도교인들’이 가장 사모하는, 가장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은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뜻은 ‘남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 놀라운 능력의 은사들이 사랑이 없다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여기서 ‘나누어 준다’라는 단어를 개역개정은 ‘구제하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이 뜻은 단순히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의 뜻을 보면, ‘한 숟갈 한 숟갈 입으로 먹여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나눔’이란 ‘구제’란 정말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의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여유가운데 주는 것이 나눔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 나눔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일을 하였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이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로움’이라는 또 다른 뜻은 ‘상급’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과 구제는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동냥하듯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4절부터 7절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특징을 15가지로 말씀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참는다’는 뜻은 “인내하다, 기다리다”라는 뜻인데 그 의미 안에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리는 데서 오는 고통을 견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본성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악한 감정을 인내하며 자신에게 잘못한 그 사람이 그 실수를 깨닫고 변화되기를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오래 참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래 참음’의 본성은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은혜가운데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오래 참음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만이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인의 사랑은 ‘친절한 사랑’입니다.
이 단어를 개역개정 성경은 ‘온유’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리고 이 뜻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다, 은혜를 배풀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온유’라는 의미 안에는 ‘유용한, 도움이 되는’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의미는 ‘나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는 삶’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성도는 그 은혜를 감사하며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면서 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친절함’라는 말은 자기에게 권리와 주권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혜로써 자신이 당당히 받아야 할 그 권리와 주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주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시기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시기’란 뜻은 ‘질투, 투기’라는 뜻인데 그 어원을 보면 ‘맹렬히 끌어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거나 성취했을 때, 그 상황과 사람에 대해 질투하고 투기하며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품꾼의 비유’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각각 일한 시간이 다름에도 주인이 모두 동일한 품삯을 나눠주자,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일했던 품꾼들이 그동안의 감사의 마음은 사라지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이 약속한 것을 모두에게 주었음에도 오히려 주인에 대한 원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기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야고보서 3장 14부터 16절 말씀’에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와 교회를 훼방하고 무너뜨리는 마귀의 최고의 수단은 ‘시기, 질투’인 것입니다.
네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뽐내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 단어를 개역개정 성경은 ‘자랑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뽐낸다, 자랑하다’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딱 한번 나오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앞에 서다, 드러내다, 튀어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앞의 ‘시기’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이 열등하다고 판단될 때에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자랑’은 이웃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고 판단될 때에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뽐냄과 자랑의 중심이 ‘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내 능력으로만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27장 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인 우리가 자랑할 것은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허탄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사도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교만하다’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풀이다’는 뜻입니다. 즉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허황된 삶 가운데서 자기를 우쭐거리며 높이려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뽐내는 마음’의 뿌리가 바로 이 ‘교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하다’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에서 찾으면 총 7번 나오는데, 그 중 6번이 ‘고린도전후서’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또 성령의 은사가 다양하고, 기적과 능력이 뜨겁게 나타났던 ‘고린도교회’였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사랑이 없고 교만이 가득하였기 때문에, 교회에 끝임 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12절’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여섯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무례하지 않는다”란 말씀은 앞의 “교만하지 아니하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교만함은 사랑이 없는 증거이고, 무례함은 교만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례히’라는 단어의 어원의 뜻을 보면 이 뜻은 “질서에 벗어난 행동을 한다. 틀에 어긋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랑은 질서와 모든 것의 조화가운데 이뤄지는데, 무례히 행함은 이 조화와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심과 교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다른 사람을 낮추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을 먼저 인정하고 예의와 섬김으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의 의미인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손해를 보며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의 백성도 유익을 추구하고 부자도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자기의 이익’이란 원어의 뜻을 보면 이 안에는 ‘강한 소유의 의지’가 담겨 있고, ‘구한다’는 단어는 매우 특별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자기의 이익을 구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나가야 할 열정과 노력을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채우는데 쏟아 붓는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 이익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의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과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나는 크리스천다’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사랑을 나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인이면서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여사는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질병과 고통 속에서 믿음의 남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그 때부터 감사와 은혜 가운데 살면서 질병도 치유 받고 훗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빙점’이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남편의 수입으로만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 수입으로는 자신의 약값조차도 내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야꼬’여사는 살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 앞에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 차렸습니다. 그리고 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면서 친절히 봉사한 결과 점점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가게가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가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 함께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 되는 것은 좋지만 이 주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어려운 사람들인데 우리가 잘되므로 다른 구멍가게들이 안 되면 어떻게 되겠소? 우리의 유익을 위해 남들의 형편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야꼬’여사는‘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아야꼬’여사는 자기 가게의 물건들을 줄일 뿐 아니라 어떤 물건은 아예 의도적으로 갖다 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손님들이 없는 물건들을 찾을 때에는 ‘그 물건은 저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손님을 다른 가게에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게는 점차 손님도 줄고, 재정적으로도 예전보다 많은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손해를 본 ‘아야꼬’여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신지 아십니까?
‘미우라 아야꼬’여사가 이렇게 장사를 하니까, 손님이 줄고, 손님이 주니까 시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때 쓴 책이 바로 ‘빙점’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바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을 때, 하나님은 가난한 구멍가게의 가정주부도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축복자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성내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성내다’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직역을 하면 “사랑은 어떤 것에도 분내도록 자극받지 아니하며” 또는 “사랑은 무언가에 의해 화가 돋워지지 아니하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외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뜻은 ‘무조건 화를 참고 참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는 뜻은 자신의 유익이나 손해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지만, 복음과 말씀 앞에서는 철저히 신앙을 지켜 나가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이나 유익에 손해가 되면 화를 내고 분노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성도는 자신의 유익에 손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참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섬기는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옛날 연탄을 태우던 시절, 그 권사님이 어느 추운 겨울날 저녁에 연탄을 피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추워서 나가 보았더니 그토록 잘 피던 연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은 이런 못된 짓을 한 사람이 세든 옆집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이 이야기 하게 되면 이웃집과 싸움으로까지 번질 것 같고, 또 교회 다니는 권사가 싸우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할까 두려워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잠을 자는 척하고 나가보니 역시나 건넌방 부인이 연탄을 또 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순간 뛰어나가 잡을까 했지만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간신히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두 주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옆집 부인이 찾아와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라고 하며, ‘사실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점쟁이한테 물었더니 누구와 실컷 싸우면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하여 일부러 싸움을 하려고 연탄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하도 잘 참아서 도저히 싸움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권서님이 그 순간 그 부인에게 점쟁이와 미신의 잘못된 것들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의 가정이 모두 구원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집 부인의 아들은 후에 목회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내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아홉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것을 개역개정 성경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한을 품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계산된 것을 보관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나중에 기회가 오면 원수를 갚기 위해 남이 내게 입힌 상처나 피해를 두고두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기억해 둔다’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사랑을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믿음의 성도는 악한 생각을 버리고 용서와 관용의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단어의 뜻 중의 하나가 바로 ‘용서’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그 은혜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열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의하다”는 뜻은 “똑바르지 않다, 곧지 않다, 구부러지다”라는 뜻인데, 이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쾌락을 위해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사랑의 묘약”이라는 책을 쓴 의사 ‘에멧트 팍스’라는 분은 자신의 글에서 “당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사는 믿음의 성도는 불의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열한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뜻은 “정확한 것, 옳은 것, 거짓이 없는 것, 참된 것”이란 뜻으로 바로 ‘참된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사는 믿음의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3장 3절’에 을 보면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메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어디를 가든지 진리라는 목걸이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항상 마음에 품은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열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사랑’입니다.
열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사랑’입니다.
열네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입니다.
열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사랑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새벽예배’에도 말씀드렸듯이 예수 안에서만 이룰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속성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며, 그리고 그 사랑의 은혜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부터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으로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기도 제목: 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품고,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죽어 가는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깨달고, 모든 목원들이 VIP를 품고, 기도하며 그들을 구원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