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3. 막 15:34. 저주를 끊고 능력이 된 십자가

2023.04.06 10:4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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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ross 3. 막 15: 34. 저주를 끊고 능력이 된 십자가. 찬 150장(갈보리산 위에)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점점 심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깊이 깨닫고 받아야 할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의 결박을 끊으신 십자가’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제사를 보면 사람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속죄 제물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받치게 했는데, 그 때에 그 속죄 제물에게 요구되는 것은 죽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 제물이심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죽음이 아리나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저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 값은 사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 제물로는 할 수 없는 오직 우리 주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그 저주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고백은 바로 내가 사망가운데서 해야만 했던 그 절규를 주님이 대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 절규 속에 우리의 죄와 저주의 절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 죄의 종노릇하고, 마귀의 종노릇하다 그렇게 그것이 저주인지도 모르고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저주가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가게 하는 것, 그 모든 저주 중에서도 가중 크고 근원적인 저주인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끊어지는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은혜가 가능할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저주를 당해주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은혜의 때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기간 중 이 십자가의 은혜를 회복하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와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야 합니다.

‘죤 뉴턴’목사님의 고백처럼 십자가를 통과한 성도는 ‘내가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또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는 것’이라는 이 두 가지를 붙들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진짜 믿었다면 우리도 우리 주변에 버림받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정말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 그런 외로운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어줘야 되고, 버팀목이 되어 줘야 되는 사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그러면 나도 내 옆에 버림받은 고통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을 붙들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이 간절한 외침은 ‘탄원의 기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말씀들은 다 번역을 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오직 오늘 본문 말씀만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것입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두 번째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른 말씀을 기록하지 않고 오직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만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에 3마디, ‘요한복음’에 3마디, 그런데 ‘마태’, ‘마가’에는 오직 오늘 본문의 말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와 ‘마가’의 입장에서는 다른 말씀보다 이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가진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극심한 고난 중에 무의식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 또한 우리의 저주의 결박을 끊으시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구약 ‘시편 22편’의 그리스도의 탄원의 성취를 말씀합니다.

그래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우리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강력한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엘리 엘리’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입니다. 자기의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데,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레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이것은 절대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레마 사박다니’의 숨겨진 뜻은 “하나님!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탄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한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탄원시’은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절망하고 낙심한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오히려 ‘탄원시’는 가장 강력한 기도며 간구입니다. 그래서 ‘탄원’이라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상태와 아픔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탄원시’는 자기 아픔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탄원시’가 놀라운 것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그래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가장 최고의 찬양입니다. 그래서 ‘탄원시’는 고난이 찬양으로 연결됩니다. ‘시편 22편’을 보면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본 것처럼 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을 보면 찬양과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붙잡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실패의 십자가’가 아니라 ‘승리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승리하는 성도는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인생의 가장 깊은 어떤 골짜기에도, 가장 깜깜한 순간에도, 정말 그야말로 기도할 수 없는 그런 마음 상태에서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 예배할 수 없는 순간에 예배의 자를 지키는 사람, 상황이 정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그래도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이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결박을 산산조각내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영광을 올려드리는 바로 그 사람 십자가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제목

1. 주님의 십자가를 품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우리의 가정과 주변의 영혼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3.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으로 VIP를 품고 기도하며 부활주일에 한 영혼 이상 초청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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