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2  요19:26-27  십자가의 공동체

2023.04.05 07:3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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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ross 2  요19:26-27  십자가의 공동체  Community of the Cross 찬151/통138  만왕의 왕 내 주께서

 과거에는 3대이상이 한 가정에 살았다면 현재는 자녀들이 없는 1세대만 살거나 홀로사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외로움, 두려움, 공황장애등의 정서적 문제가 많아지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확장형 가족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반려동물을 가족화하거나 심지어는 AI까지 가족이 되어 돌봐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교회공동체는 갈수록 사회적으로 돌봐야 할 영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교회가 이런 시대에 좋은 공동체의 본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그럴까요? 여기에 우리가 못박아야할 세번째 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번째 말씀을 두가지 나눠 살펴보며 그 솔루션을 찿아봅시다.

첫째 십자가 공동체는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You must love to the end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세번째 말씀을 한번 더 보겠습니다.

요19:26-27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때 그 곁에는 대부분 친인척만 남았습니다. 근데 그중에 요한에게 예수님의 어머니를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하필 요한이었을까요? 어떤분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지간이었기에 맡겼을거라 말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친 형제 자매들이 매우 많았습니다.(마13:55) 근데 이모의 아들 요한에게 맡긴 것은 혈육적 이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가장 믿을만한 제자였기 때문일까요? 지금보면 요한이 매우 사랑이 많고 훌륭해 보이지만 그 당시 요한의 별명은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였습니다. 우리말로 “성질이 불같다”는 의미입니다. 거기다 탐욕스러웠습니다. 막10장에 예수님의 우편 좌편자리까지 노린 사람이 바로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런 요한에게 뭘 보고 맡겼을까요?

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격이 일도 없는 요한에게 너무나 소중한 어머니를 맡긴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가롯유다가 배신할것을 알면서도 그의 발을 닦아주었고 배드로가 모든 걸 때려치우고 3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지만, 그에게 당신의 제자들을 맡겼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표현하는데 “이 끝”은 언제일까요? 흔히 죽기까지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단어(테텔로스)는 주로 “마지막때”, “재림의 때”로 표현합니다. 즉 죽음 너머, 다시오실 때까지 우리를 사랑하실 것에 대해 약속한 말씀입니다. 실제로 죽은 이후, 부활했을때 도망쳤던 베드로를 찿아와서 양을 맡겼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사랑한게 아니라 무조건적 영원한 사랑인 것입니다. 한 여집사님의 사과 비유처럼 우리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란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되십니까? 예수님은 “테 텔로스” 기한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거나 사랑하고 있다면 그 “기한”을 못박을수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 공동체는 “십자가의 피로 세운 가족 공동체입니다.” It is a community created by the blood of the cross

예수님은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 보소서 아들입니다.”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다” 라고 말했습니다.(요19:26-27) 우린 여기서 중요한 두가지를 봅니다. 하나는 이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여러 아픔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런 이들을 불러모아 서로 의지 할 수 있는 한 가족이 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공동체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아픔과 외로움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초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이별과 죽음의 아픔 그리고 관계의 깨어짐을 경험한 이시대 모든 상처입은 자를 불러모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서 끝까지 사랑하며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 아래에서 만든 교회공동체입니다.

저는 요즘 목장과 목자들이 주님의 성도와 교회를 위해 섬기는 모습을 보며 큰 은혜를 받습니다.  물론 이땅의 모든교회가 다 이러면 좋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할때가 더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한가지를 자주 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십자가의 보혈아래서 만들어진 공동체”란 점입니다.

교회에서 만들어진 공동체는 예수가 빠지면 “동호회모임”이 됩니다. 성가동호회, 장로권사동호회, 목사동호회 목장동호회등 동호회의 특징은 싸우면 안봅니다. 딴 동호회 가면 되죠. 근데 가족은 그렇게 못합니다. 싸워도 봐야하고 미워도 바꿀수가 없습니다. 혈연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보혈로 연결된 영적 혈연관계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예수님이 빠지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요한은 훗날 마리아를 극진히 보살피며 노년에 마리아가 걸을 수 없게 되자 그녀를 업고 다녔다고 기록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요한은 힘들때마다 마리아를 본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흘리며 말씀하신것을 떠올리며 마리아를 섬겼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만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의 못”에 박혀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자를 보고 자녀를 보고 동역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 “못박힌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십자가에 나를 못박는 기도(아버지의 능력으로)

2) 십자가에 우리를 못박는 기도(성령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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