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28  고전 12:12-31  교회는 신비한 몸입니다.

2023.03.31 07:0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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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교회 28  고전 12:12-31  교회는 신비한 몸입니다.   292/415 주 없이 살 수 없네.

한국에 살때 옆집 한 여자아이가 태어나 3살이 되었는데도 잘 걷지를 못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5살이 되어도 8살이 되어도 잘못걸었습니다. 알고보니 아이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이 태어나서 균형을 맞출수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재활훈련을 통해서 10살이 되서야 제대로 걸을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몸이 참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이 신비한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왜일까요? 그 3가지 이유를 통해서 오늘도 이땅의 더 좋은 교회가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교회는 “서로 다른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12-13)

우리는 가끔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서 피하거나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12절에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몸이듯…”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의 특징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13절에 설명하고 있듯이 유대인, 헬라인, 종과 자유자 등이 한 예배를 드리다보니 각종 의견과 생각의 차이로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사람들은 한 성령으로 부르시는 것일까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홀로도 존재하지만, 함께 하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와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을,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를, 다니엘에게 세친구를 붙여주듯 함께 하는 자들을 붙여주십니다. 왜냐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붙여주는 사람들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상호 보완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처음 결혼했을때 아내와 성격, 삶의 성장배경, 식습관,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많이 싸웠습니다. 근데 기도중에 하나님을 통해 아내를 보니, 그 다른것들이 “나에게 없는 것들인 것”을 깨닫고 아내를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더 성숙해지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날때, 다름을 인정하는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한차원더 높은 방법은 나에게 없는 그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다른 사람을 한몸으로 붙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잘 안될까요? 창11장을 보면 죄의 상징인 바벨탑사건을 통해서 한민족, 한언어, 한문화였던 인류가 다민족으로 나눠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한몸이 하나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죄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회복되죠? 행2장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통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가정과 목장과 일터에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키는 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모든 지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4-24)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리는 몇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첫번째 “열등감” 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면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잘 안보이는 발이나 귀는 손이나 눈보다 덜 중요하기에 난 이몸하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난 별로 쓸모없어” 이런분이 있다면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속에 꼭 필요한 존재랍니다. 이말은 중요합니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어릴적 오남매의 가정에서 자라다보니 늘 “엄마는 OO만 예뻐해, 난 별로 중요하지 않아”란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근데 자녀를 낳다보니 큰놈은 큰놈데로 작은놈은 작은놈데로 다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목장도 부족한 목장도 잘되는 목장도 모두 꼭 필요합니다. 교회도 큰교회만 아니라 작은교회도 꼭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두번째 잘못된 생각은 “교만과 무시”입니다. 21-23절까지 요약하면 눈이 손더러 덜 중요하다. 머리가 발더러 덜 중요하다. 우리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은연중에 무시하곤 합니다. 근데 바울은 반대의 말을 합니다. 고전12:23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하나님이 약하고 볼품없는 자를 더 신경쓴답니다. 저희 막내 하엘이가 간밤에 너무 아픈적이 있습니다. 긴급한 나머지 건강한 아이들 4명을 집에 놓고 병원으로 가버렸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약한사람 노인들 병든 환우들에게 더 집중하고 돌보게 됩니다. 간혹 교회가 젊은분들만 원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 말 잘듣는 사람들만 원합니다. 그러나 병든사람 연약한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그곳에 부어질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더좋은 교회가 되려면 열등감과 교만을 넘어 모두가 존귀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 교회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25-26)

오늘의 결론입니다. 25-26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회를 “고통을 느끼는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여러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있나요? 있습니다. “죽은 몸”입니다. 죽은 몸은 칼로 찔러도, 피가나도 못느낍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뭉둥병입니다. 뭉둥병은 팔이 떨어져 나가도 다리가 썩어가도 못느낍니다. 이병을 구약에서는 죄의 결과로 말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죄가 들어와서 미워하거나 관심이 없어지면 어느지체가 죽어도 모릅니다. 어느지체가 어려운 문제로 떨어져 나가도 못느낍니다.. 목장에 다툼이 일어나면 차라리 나가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살아있어도 산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이런 부작용이 심해집니다. 인근의 한 대형교회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에 교회 문제로 몇백명이 나갔는데도 괜찮답니다. 대형교회는 가만있어도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은 대형교회만이 아닙니다. 20여명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서로 다퉈서 몇명이 나갔습니다. 그랫더니 이제 교회가 행복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살았지만 죽어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그냥 “몸”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지체를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주변의 지체들을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아껴주고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되도록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가정과 일터와 목장에서 서로다른지체들을 품고 배우며 섬기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목장과 교회가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와 예배를 위해)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종려주일예배와 고난주간과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온공동체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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