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27. 고전 12: 1-11. 성령이 주시는 은사.

2023.03.30 10:3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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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 1-11. 성령이 주시는 은사. 찬197장(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또 한 편으로 굉장히 열정적이고, 역동적이 교회였습니다. 특히 ‘사도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성령의 사람 ‘사도바울’과 같이 은사를 사모하고, 또 많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가운데 영적 교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크고 영적으로 능력이 있다’는 영적 교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 다툼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에게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답변을 보낸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령한 은사들에 대하여 여러분이 모르고 지내기를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헬라어 순서를 보면 ‘대하여’부터 시작합니다. 즉 이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보낸 편지에 대하여 내가 답변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의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것, 곧 성령의 은사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지금부터 ’사도바울‘ 자신이 하는 설명을 너희들이 반드시 정확히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 “알다시피 여러분이 이방 사람일 때에는, 여러분은, 이리저리 끄는 대로,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끌려 다녔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은 혈통적으로 보면 그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안에서는 그들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대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이방인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말 못하는 우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뒤에도 이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마치 우상에게 끌려서 살던 옛사람의 삶의 모습대로 살면서 내 은사가 더 크니, 너의 것이 더 크니 경쟁하는 것이 꼭 우상을 섬길 때와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말한다’는 것은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하게 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형상인 우상을 섬기는 자와 영적으로 말씀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의 차이는 바로 성도는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같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성령의 말씀하심 속에서 성령님에 의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절대로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고백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를 주로 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은 이미 그 안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의 지혜나 이성이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렇게 이미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데, 너희는 왜 성령의 은사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너희의 자랑으로 삼느냐?”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신 은사를 성령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지 왜 인간의 자랑으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부터 11절에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관점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4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은사’란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선물’이 바로 ‘은사’, ‘카리스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은사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는, ‘은사의 주체가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여러 가지’라는 단어의 뜻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여러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는 뜻은 ‘성령의 은사는 다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 한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은사는 한 성령님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가 소중한 것이며, 또 성령님에게서 나온 은사는 사람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고, 그 은사로 인해서 자신을 과시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이 말씀 또한 4절의 말씀과 같이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나 그 섬기는 일을 주시는 분은 주님 한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섬기는 일’이란 단어의 의미는 ‘봉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를 위한 것입니다. 신분의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봉사를 위한 것, 섬김을 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되, 결단코 나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봉사입니다. 왜냐하면 그 섬김의 일을 맡겨주신 분이 주님이시고, 또 우리는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 그 봉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일의 성과’라는 단어를 개역개정은 ‘사역’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어떤 사람은 목사로 사역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지만, 이 단어가 가진 중요한 의미는 믿음의 성도의 모든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단지 교회에서만, 또는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사명자이며 내 삶의 모든 곳, 내 가정, 직장, 사업장, 목장과 교회 이 모든 곳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역의 장소와 모양은 다 다르지만 그 사역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이뤄나가실 열매를 기대하며, 내 삶의 모든 곳에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익’이란 단어의 정확한 뜻은 ‘이익들’이란 뜻으로, 바로 ‘교회 전체의 이익이 되고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은사의 높고 낮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있는 은사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게 있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목회자와 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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