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16. 고전 7: 1-16. 주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2023.03.10 11:0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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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7: 1-16. 주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찬 435(나의 영원하신 기업)

우리가 정말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나는 진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믿는 사람인지, 하나님의 성전인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해진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면서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고 말을 하는 대도 여전히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감격했지만, 지금은 그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행복을 잃어버리고 행복하지 않으니까, 행복하려고 세상에서 그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7장’ 말씀은 ‘결혼 문제’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사도바울’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 7장’을 포함해 ‘고린도전서’의 전체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래서 주님 안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또 ‘아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 문제’는 참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어려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우리 ‘부부 문제’의 원인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자기만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또 요구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행복한 자가 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힘든 이유는 배우자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 때문도, 자녀 때문도 아닙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 본질이 아닙니다.

그 본질은 나 자신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얻지 못하고 가족들을 통해 끝임 없어 내 행복만을 충족하려하니까, 가족들이 힘들고, 자기 자신도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7장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결혼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무서운 핍박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붙들려 가고, 예수를 믿으면 죽을 수도 있는 핍박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은 곧 심판을 받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텐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고 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대답을 합니다.

‘결혼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음행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도 저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십시오.”

지금 ‘사도바울’은 말할 수 없이 음란한 ‘고린도’라는 도시에 살면서, 계속해서 성적인 유혹과 충동을 받던, 그런 ‘고린도 교인들’을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한 것입니다.

자신처럼 독신으로 사는 게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더 좋지만,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성적인 유혹을 받고, 그래서 음행을 빠지게 되느니 결혼을 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부부에게 아주 친밀한 성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 3절에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삶은 그런 성생활은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보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그런 일들은 아주 거룩한 삶이고, 성생활 같은 것은 아주 육신적이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성은 부부 사이에 하나님이 주신 정말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부생활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전적으로 말하려는 핵심은 모든 가정생활, 부부 생활, 성생활, 이 모든 것은 ‘배우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배우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사도바울’이 성생활을 자신의 ‘권리’라고 말하지 않고, ‘의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4절에 “아내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부부사이에도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믿었다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 인해 충분히 행복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랑과 은혜와 행복을 배우자에게, 또 자녀들에게, 또 이웃들에게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면, 배우자를 위해서도 그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 그래서 주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자인 배우자와의 이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10절 말씀에 ‘결혼 했으면 이혼하지 말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대원칙’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기는 것이 또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또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도 이혼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중요한 것은 그 기준도 언제나 배우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혼의 동기가 내가 편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에 대해 16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내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남편 된 이여, 그대가 혹시나 그대의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압니까?”

평생 살다가 그저 믿지 않는 배우자 한 사람 구원하는 것으로 삶이 끝났다할지라도 그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자의 영혼을 귀하게 여겨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결혼이나 이혼의 문제에서 권면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주 안에서 행복한 자로서, 그 행복을 배우자에게 또 자녀들에게 또 우리의 이웃들에게 나누는 참된 축복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나의 삶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구원의 은혜와 행복이 회복되게 하시고, 그 행복과 사랑이 내 배우자와 자녀와 가정 그리고 삶의 자리로 흘러가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와 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일/새벽/목장에 성령의 충만이 임하고 날마다 새로운 VIP들이 함께 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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