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12. 고전 4: 14-21,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2023.03.03 10:4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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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4: 14-21,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찬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이 1년 반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세우고 성장시킨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앞 장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정성을 다해 성장 시킨 ‘고린도교회’가 분쟁과 다툼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신비주의와 성적 음란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권면의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비판과 훈계를 한 것은 그들을 부끄럽고 창피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녀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훈계하여 복음 안에서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스승’이란 단어의 의미를 보면, 당시 로마의 지배계층 사람들은 노예나 종들 가운데서 똑똑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을 골라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사들은 그들의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는 노예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항상 듣기 좋은 말과 칭찬만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가슴에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그 누구보다도 더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사랑으로 자녀를 훈계하고, 때로는 사랑의 매를 들어서라도 자녀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부모요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너희에게 칭찬만하고 듣기 좋은 말만하는 일만 스승보다, 진심을 다하고 사랑을 다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너희를 책망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다’고 할 때, ‘낳았다’는 단어의 뜻은 조금 특별한 단어인데,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은 “생명을 물려주었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자신의 생명을 물려줄 만큼 귀한 자식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교회도 많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교회와 말씀의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만큼 복음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목회자와 교회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 역시 나의 헌신이 필요하고, 헌금이 강조되는 말씀보다는 내 삶의 위로를 주고, 기쁨을 주고, 용기를 주는 설교를 더 좋아하고, 그런 말씀만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말씀한 것처럼,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데도, 듣기 좋은 말만하고 책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를 영적 파멸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나 성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데 있어서, 내 입맛에 맞고, 성도들의 원하고 기뻐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말씀을 전하고, 또 내 믿음과 영혼을 살리는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 말씀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기서 ‘본 받다’라는 뜻은 “따라서 행동하다”라는 뜻으로, “스승의 습관과 행동까지도 따라하는 삶 전체를 따라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먼저 말씀이 삶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또 성도들 또한 말씀이 삶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과 삶의 일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교회의 직분자로서, 또 목자로서, 또 부모로서,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나의 모습이 믿는 자의 모습인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17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교만해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채찍을 들고 여러분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각처에 세운 교회들을 다니며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고린도교회’에 갈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총애하는 ‘디모데’를 자신을 대신해 보내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의 일부 거짓된 복음을 가르쳤던 사람들은 다시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온갖 거짓된 말과 철학으로 ‘고린도교회’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말과 언변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면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저 말만 풍성한 교회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책망하면서 본문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당시 ‘고린도교회’가 말만 많고 아무런 믿음의 열매나 결과가 없었기에 이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의미는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현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고,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시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백성은 그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 은혜와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담대히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 기둥과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인 불 기둥을 붙잡고 마침내 축복의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믿음의 성도는 광야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그 문제가 아닌 내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붙잡고 가는 믿음의 성도를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나의 삶에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이 성취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와 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일/새벽/목장에 성령의 충만이 임하고 날마다 새로운 VIP들이 함께 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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