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7. 고전 3: 1-9,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
2023.02.23 11:08
예수인교회
고전 3: 1-9,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 찬 325(예수가 함께 계시니)
신앙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기초가 잘 세워져 하나님의 선한 사명을 감당하며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그 신앙의 기초가 부실하여 겉은 멀쩡한데 그 안의 기초가 항상 흔들리고 바로 서지 않아 작은 문제와 시험에도 쉽게 무너지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여기서 ‘영어 속한 사람들’이란 뜻은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바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충만한 사람’을 우리가 살펴본 고린도전서 1장 6절에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씀했는데, 이 뜻이 ‘기초가 튼튼하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운데 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령충만한 성도는 그 믿음의 기초가 튼튼해서, 어떤 힘든 상황이 닥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믿음 안에서 점점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믿음이 ‘어린 아이와 같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신앙이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은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믿지만, 정작 그 신앙은 자라나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보다는 세상의 환경과 상황에 쉽게 흔들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고린도교회’ 또한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로 인해 교회의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일이 가로막히는 일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육에 속한 성도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로 ‘사도바울’은 연약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의 특징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축복의 말씀’, ‘위로의 말씀’처럼 내게 듣기 좋고, 기분 좋은 말씀은 은혜로 받으면서, ‘사명’, ‘순종’, ‘전도’, ‘헌금’과 같은 헌신과 수고가 필요한 말씀에는 쉽게 상처를 받고 시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 성도를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단단한 음식’이란 “거친 음식”이란 뜻으로, 아무 노력이나 수고가 없이 그냥 삼킬 수 있는 ‘젖과 대조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에는 수고와 노력과 헌신이 반드시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사도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시기가 많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육신에 속한 성도들도 이와 같이 시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은 섬김에 자리를 외면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사도바울’은 이들은 ‘분쟁을 일으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편이다”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져 서로를 비방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사건건 대립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바울’과 ‘아볼로’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정작 그 신앙의 삶은 ‘바울’과 ‘아볼로’의 신앙을 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더 강화하고, 세력을 넓히는데 더 큰 관심을 갖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충만하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생각과 판단으로 교회 안에서 시기와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 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자신과 ‘아볼로’를 함께 ‘일꾼들’이라고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일꾼’란 뜻은 ‘고용된 사람,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이란 뜻으로, ‘사도바울’ 자신과 ‘아볼로’ 모두는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함께 이뤄가는 믿음의 동역자라고 말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6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건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서로를 시기하고 분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그들이 ‘교회의 일’을 감당하면서 그 일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심고 물주는 것은 ‘사도바울’과 ‘아볼로’ 같은 사역자들이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그 모든 일의 결실을 맺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일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은 교회의 일이나 또 우리의 삶을 위해 하는 그 모든 일이 내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그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 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역자’란 뜻이 바로 ‘함께 일하는 사람,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가는 삶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삯’이란 뜻은 ‘수고의 대가, 고된 노동의 보상’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보상,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연약한 육신에 속한 신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성령충만하고, 성숙한 신앙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이뤄나가는 영에 속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나의 신앙이 영에 속한 성령충만한 믿음이 되어 삶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건강과 치료)/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