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6. 고전 2:6-16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2023.02.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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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6-16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동물도 소리를 내지만, 인간이 말 소리를 내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이 소리를 내어도
그리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도 동물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동물들은 글을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이용해 기록을 남기고 글을 씁니다.
이 세상에서 역사, 문명, 문화, 기술, 그리고 그 외 많은 것들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데 언어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15세기 중반인 1440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금속 인쇄기를 발명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가 발명한 인쇄기는 엄청난 업적으로 인정 받습니다.
특별히 유럽 문화사에서 금속활자 인쇄기는, 구텐베르크 이후의 유럽사회의 지식과 정보의 보급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유럽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 인쇄기로 인쇄를 하는 영상을 유투브에서 봤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에 만들어진 금속 인쇄기로 나오는 책의 페이지를 보면서
그 당시 유럽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Chat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라는 인공지능을 기반한 언어모델이 매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주제어를 말하면 그 주제어에 대해서 Chat GPT가 글을 써 나갑니다. 글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서 학생들이 과제물을 이 언어모델을 이용해서 제출하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변호사가 담당할 준비서면의 작성이나 판사나 검사가 작성할 판결문이나 공소장의 작성을 대체하는 수준까지도 기대된다는 전망도 있어서 앞으로 Chat GPT가 어느 수준으로 까지 발전할 지 저는 짐작이 안 됩니다.언어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될 까봐 조금은 겁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2장 6절에서 16절 중에서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곧 신령한 것으로 신령한 것을 설명합니다.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말, 곧 신령한 것으로 신령한 것을 설명합니다는 말씀에
저의 시선은 고정이 됩니다.
말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가끔은 언어 천재가 있어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언어를 마스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말을 배웁니다.
아기를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바로 그 대상입니다.
아기는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우렁차게 웁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웁니다.
아기의 울음은 그래서 때로는 배고파, 졸리다, 아프다 등등의 메세지를 뜻합니다.
그러다가 아기는 엄마, 아빠 등등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아기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어떤가요?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의 확신을 얻은 이후 우리의 언어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말을 우리가 얼마나 배웠는지
그리고 가르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얼마 만큼의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첫 번째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말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지혜는 그 깊이가 바다 같습니다. 그 높이가 하늘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크기가 우주와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로부터 지혜의 말들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입니다.
열왕기상 6장에 기록된 솔로몬을 찾아 온 스바 여왕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지혜를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도 그렇게 됩니다.
지혜를 가지면 그 지혜에 근거해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삶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마주하게 될 수 많은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를 데리고 온 두 여인의 송사를 솔로몬은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며
누가 진짜 그 아기의 엄마인지를 밝혀냅니다.
그래서 저는 지혜가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압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가 나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는데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멸망할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고요
더 나아가 우리는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고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지혜라는 것입니다.
보물찾기를 마지막으로 언제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보물찾기를 하면 숨겨 놓은 보물을
남들보다 빠르게 잘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2월 12일 교육부 예배를 준비하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티비 리모컨이 안 보였습니다.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안나 사모님이 아이들에게 리모컨을 찾자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교육부 예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1분 정도 후에 윤기가 리모컨을 찾았어요 외쳤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이란 표현 때문에 또 떠오른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 한 선배 목사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친교를 하고 있는데 책장에 그 당시 제가 읽어야 하는 책이 있는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재로 가서 책을 가리키면서 이 책을 빌려도 되는지
그 목사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된다고 하셔서 제가 그 책을 꺼냈고
책을 펼쳐 보는 순간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빳빳한 100달러 지폐였습니다.
사모님 몰래 비상금을 숨겨 놓으신 거였습니다.
다행히 사모님은 그 상황을 못보셨고,
저는 엄청 빨리 오가는 목사님의 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지만, 바로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비록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지만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구할 때 그리고 사모할 때, 우리의 눈에 들어올 것이고 발견의 기쁨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합시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해야 사랑의 언어, 권면과 감사의 말, 축복의 말, 평화의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등 우리가 배우고 말해야 할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배우고 해야 할 언어 목록에 더하고 말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인간은 영, 혼, 그리고 육을 지닌 존재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컴퓨터처럼 기계로 여겨지기보다는 이제 저에게 존재의 개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에는 상상도 못했던 로봇이 이제는 우리들이 하듯이 산에서 걷고 뛰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로봇과 우리들은 영혼의 유무라는 문제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로봇은 영혼이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것도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10절 말씀이 증거하듯이 나와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고린도전서 2장 11절과 12절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처럼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말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철학을 공부하면 무신론자들도 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의 존재라는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글을 쓴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지혜에만 의지해서 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신의 속성(인격)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만으로도 그러한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것들에 근거해 신령한 것으로 신령한 것을 설명한다면 어떨까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알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우리는 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지혜들이 나를 통해서 내 삶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감추인 보배가 발견되듯
영적인 그리고 신령한 것들이 설명되며 그 일은 신령한 것을 말하는 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쫓아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며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이기에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의 말을 하며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사실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입니다. 이 두 언어가 내 마음에 넘쳐나고 그러한 말을 하는 예수인들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성령 충만을 구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기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