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3. 고전 1:18-25, 십자가 복음의 능력!

2023.02.16 10:18

예수인교회

조회 수388

고전 1:18-25, 십자가 복음의 능력!, 찬150장(갈보리산 위에)

오늘 본문 18절에서‘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게 된 은혜”, 즉 “십자가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 죄악과 저주에 빠져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했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과 천국을 허락해 주셨다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 즉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자들은 그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어리석다’라는 뜻은 ‘분별하지 못하다, 앞을 가리다, 이해하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의 참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성도들을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을 미련한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종말은 결국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이란 뜻은 ‘죽이다, 파괴하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완전한 형벌과 소멸’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미련한 것이라며 조롱하고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 그리고 부귀와 권세를 자랑했던 사람들은 결국 주님 앞에 서게 되는 심판 날에 이르면 그 흔적조차도 남지 않고 소멸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9절, 20절에 ‘사도바울’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한 마디로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는 교만한 자들을 폐하신다, 즉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지혜 있는 자’는 ‘학문적 지식이 많은 사람’을 말하고, ‘총명한 자’는 ‘머리가 좋은 사람’을 말합니다. ‘현자’는 ‘당시 성경을 연구했던 유대인 서기관과 율법교사’를 말하는 것이고, ‘학자’는 ‘당시 헬라 철학을 공부해서, 사람들로부터 학자와 교수로 인정을 받던 지식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당시 기준으로 볼 때는 최고의 학식과 지위를 누리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세상적인 지식이 많고 똑똑하다 하더라도, 이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비교하면, 그들의 가장 뛰어난 그 어떤 지혜와 학문도 하나님과는 비교조차도 될 수 없는 초라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의 지혜가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또 반대로 비록 세상에서는 연약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오직 말씀과 기도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며,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인도하시며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라는 것은 ‘기적이나, 환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요구하고 그것을 따라 다닌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통해 자기의 삶에 이익이 있을 때는 그것을 믿고,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참된 구원인 십자가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눈에 보이는 삶의 유익과 기적과 표적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가운데 병 고침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십자가의 복음’가운데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적을 보기 위해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서 기적이 일어나고 표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어떤 것 보다 십자가의 복음이 가장 우선시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본문을 보면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는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당시 그리스 사람, 즉 헬라인들은 헬라 철학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합리적인 지혜’를 추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의 지혜를 통해 진리를 찾으려 했고, 이성을 통해 생명의 근원을 발견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지혜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능력과 실력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삶은 물론 교회의 봉사와 헌신하는 일에도 기도와 말씀이 없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삶이 미련한 삶이요, 멸망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24절에 ‘부르심은 받은 믿음의 백성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나의 삶속에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흐르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능력으로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