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교회. 고린도전서 1:10-17 사도바울이 권하는 대로

2023.02.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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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하는 교회. 고린도전서 1:10-17 사도바울이 권하는 대로 (찬송가 182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그의 권면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그 말씀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에게 사도 바울의 권함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세 가지를 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분열을 일으키는 구성원들이 있었으며, 마음과 생각이 나누어져서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어떤 교훈일까요? 예수인 교회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일치하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분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를 돌아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셋째,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그래서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인 회는 이런 문제들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사도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 이 세 가지를 더 잘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그리고 예수인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는 것이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기에 이 새벽에 저는 그 세 가지 권면에 대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첫 번째 권함은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구동성 게임을 떠올려보면, 여러 사람이 일치된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주 많이 어렵습니다. 모두가 일치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소리 즉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청개구리처럼 사람은 때로 내가 해야 하는 말이 이것인 것을 알면서도 저것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대화하는 상대에 대한 내 감정에 따라 우리의 말은 변화의 곡선을 심하게 그립니다.

문제는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그리고 모두가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때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일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일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치하는 말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니 그냥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신학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성자 예수를 성부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 아리우스와 성자 예수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를 때 생각 그리고 말의 일치를 이루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신학적 논쟁이 일어날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둘 중 하나가 더 진리에 가까울 수 있는 필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다우트입니다.

2008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로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주연으로 나옵니다. 1964년 뉴욕주 브롱크스에 있는 카톨릭 학교 성 니콜라스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결말 부분에서 나온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는데요, . 영화에서 주인공(알로이시스)으로 나오는 메릴 스트립은 또 다른 주인공인 필립 호프만(신부 플린)이 흑인 아이 도널드와 부도덕한 관계에 있다고 의심하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두 주연 배우의 대화 장면에서 수녀 알로이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뭐든지 다 하겠어요.. 지옥에 간다고 해도! 결국 플린 신부는 그 학교를 떠나고 맙니다. 하지만 플린은 더 큰 교회로 임명을 받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플린 신부를 쫓아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사실을 다른 수녀에게 말하면서 메릴 스트립은 울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I have doubts. I have such doubts. 나의 믿음과 그로 인해 내가 한 행동이 내 믿음을 흔들 때 여러분들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영화 Doubt는 내가 확신하기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틀릴 때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말은 일그러한 이유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영화가 그것을 다루고 있고 실제로 고린도 교회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여러분은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치하는 말을 하는 것 우리의 교회 공동체를 지키는 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를 위해서도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권합니다.

분열은 찢어져 나뉘는 것입니다. 집단이나 단체, 사상 따위가 갈라져서 나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찢어져 나뉘는 것,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피부 중 어디가 찢어져 보신 적 있으시면 그 부위가 아주 작아도 얼마나 아픈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압니다. 분열은 그러한 고통을 내포합니다.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 이 경우에는 전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상처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살이 찢어지게 되면 시간이 지나 벌어진 틈이 아물고 나아도 흉터는 남습니다.

공동체의 분열은 마찬가지로 생채기를 남깁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맙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안타깝게도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 아볼로를 따르는 사람들, 게바(베드로)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합니다. 예수인교회 이름이 말해주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고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고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인 교회라는 이름을 그래서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라 교회의 이름을 보기만 해도 때로는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 여러분 가운데서 분열을 일으키지 말며라는 권면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찢겨져 나뉘어지는 것이 주는 고통을 안다면 그 앎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우리들이 각 몸의 지체가 되어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한 권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메시지 일 것입니다.

세 번째, 사도 바울은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친다.. 쉬운 일인가요? 아주 많이 어려운 일입니다. 부부 사이에서도이건 매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취미가 같을 때 사람들은 잘 뭉칩니다. 마음과 생각이 달라도 사람들은 취미가 같으면 설령 잘 뭉치는 것은 아니어도 함께 하고 즐거운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모이면 그 일에 몰두합니다.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어떻습니까? 비교 대상군이 다르긴 하지만, 취미로 뭉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때로 교회가 왜 이럴까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수인 교회는 물론 예외입니다. 취미로 모이는 사람들은 개인의 성향에 덜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취미로 인해 마음과 생각이 한 군데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취미로 모인 사람들 보다 못해 보이는 교회를 보고 듣고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달라서 교회에 나와도 푯대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한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의지가 그대로 그들의 모습에서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교

회가 뭐 이래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마음과 생각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데 사도 바을은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뭉치는 것 많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 건가요? 만약에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제 마음에 딱 떠오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그리고 내 삶의 주인으로 예수를 모시면 같은 마음을 우리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이 같아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론 인간관계에서 늘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있다 없다? 답은 그 반대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완벽히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존재가 있다면 저는 그것도 이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권함대로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는 것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저절로 하게 되고 나의 마음이 돌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런 상황에 있고 그런 상태일 때, 예수를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세 가지 권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그 답이 있다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모두 일치하는 말을 하는 것, 분열을 일으키지 말고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한 몸이 되고 단결하며 모이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인들이 되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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