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상 16. 히 11:17-40, 믿음으로 사는 삶

2023.02.0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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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17-40,믿음으로 사는 삶, 찬 393 장(오 신실하신 주)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달력의 한 장이 그 사이 넘어갔습니다.

벌써 2023년의 2월이 됐습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볼 때 여러분들은 얼마만큼 비상하셨습니까?

2023년의 첫 날 부터 심하게 아파서 저도 지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꺼낸 질문에 저도 자신 있게 답을 못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월 한달은 저도 지난 달과 달리 비상하고 싶습니다.

그런 이유로, 특별히 지난 한 주간 저는 하늘을 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비상을 할 수 없는, 나에게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가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1월 첫 날부터 아파서 거의 한 주를 침대와 밀착한 채 지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낀채 2023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기 때문에

1월 말에 그리고 2월을 시작하면서 저는 그 두 가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질량을 지닌 두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 때문입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점프를 할 때 우리는 얼마 못 가서 다시 땅에 발을 딛게 됩니다.

공을 공중으로 높이 던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법칙대로 인간은 물리적으로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미국인 윌버 라이트와 그의 동생 오빌 라이트는 1903년 12월 17일

조종이 가능하고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를 제작해

이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인간이 하늘을 나는 상상력에 힘입어

라이트 형제는 인간 역사에서 엄청난 발명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럼에도 정말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비행기에 타서 우리는 비행 시간 내내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늘을 나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비행기이죠.

예전에 번지점프를 한 교회 후배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점프대에서 뛰어 내렸을 때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고요.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비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뛰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번지 점프대에서 뛰어내렸는데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낙심하거나 비상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는 것처럼 비상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에서

우리의 비상은 시작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늘 구할 때 우리는 비로소

비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상이 의미하는 의미 그대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힘주셔서

내가 비상하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한 달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올 한해 비상하는 예수인이 되길 소원하며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두 가지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믿음은 시험 받을 때 오롯이 드러난다는 사실 입니다.

시험은 늘 어렵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언제나 나를 기다립니다. 머리가 좋아서 알고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또는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는 시험이 남들에 비해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남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의 지식을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면 시험 그 자체는 인간에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보는 시간에는 많은 이들이 긴장을 해서 아는 것도 틀릴 때가 있으니까 말이죠.

배우지 않았을 때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했을 때 우리가 모르는 것은 늘 존재합니다.

지식을 말할 때 배워서 머리로 아는 지식이 있고, 경험해서 몸으로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전자는 이론이나 원리라고 한다면 후자는 운전과 같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이든 몸이 기억하는 지식이든 시험을 통해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우리는 확인 받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운전 면허를 따려고 한 제 아내도 제가 보기에는 운전을 잘 하는데 시험만 보면 긴장해서 여러 번 떨어지더라고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의 믿음은 오롯이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며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기도하신 내용에 그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이겠죠?

여러분들은 얼마나 자주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길 기도하십니까? 사탄도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욕망을 파고든 그 시험들을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의 연약함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험 앞에서 속수 무책이 될 수 밖에 없는 가능성이 유한하지 않습니다. 무한합니다.

그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또는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생각할 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이성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아들을 문자 그대로 바치는 것,

그것도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얻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 아닙니까? 이 질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려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하나님께서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당신이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실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은 정말 위대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 사실 만으로도 엄청납니다.

17절 말씀에 다시 한 번 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 가면서 만나게 되는 믿음의 인물들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다시 알려줍니다.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창녀 라합, 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이 나를 찾아올 때 믿음으로 우리는 그 시험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기록된 수 많은 이들이 믿음으로 구원과 약속의 하나님을 경험한 것처럼 믿음으로 우리도 동일한 일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으십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내하는 것, 정말 어려운 일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즉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몸소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믿음 때문에 믿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그리고 어디까지 견디고 참아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믿음 때문에 조롱을 당하거나, 채찍으로 맞거나, 결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며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믿음 때문에 돌로 맞은 사람, 톱질을 당한 사람, 칼에 맞아 죽은 사람 등등 믿음 때문에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이러한 일들을 감수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 모양으로 자신이 기독교임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예수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와 산과 땅굴과 동굴을 헤매면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역동적입니다. 오래 참는 삶이고 죽음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신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때때로 내게 주어지는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예수인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들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삶,

그 삶이 우리가 비상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월요일은 제가 일하는 America Evangelical University의

2023년 봄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출근을 했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고

이를 위한 주의 제자들을 세워나가는 일을 하는

저희 학교가 비상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미얀마 목장의 목자 안영준 장로님도 계신데요,

미얀마 목장에서 이삼열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0년 넘게 미얀마에서 선교 사역을 해오신 이동현 선교사님도 계신데

그 두 분의 헌신과 수고를 힘입어 감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전으로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모든 학교들이 문을 닫아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15명의 미얀마 학생들이 공부를 할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 일에 제가 일하고 있는 학교도 동참하게 되었고

믿음으로 비상하는 일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한국의 찬양 및 문화 사역 단체 제이어스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학교 입학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경험하며

저는 비상하는 일의 소중함과 그 놀라운 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이 주는 기쁨과 환희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인 모두가 믿음으로 사는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험이 찾아올 때마다 믿음으로 그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목도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난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비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고 고난을 견뎌내며 내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중보기도: 목장에서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가 나타나도록, 미얀마의 15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도록

예수인 교회 모든 예배 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도록, 그리고 예배를 통해 믿음으로 비상하는 힘을 얻는 예수인들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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