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상 12. 히 9:23-3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

2023.01.2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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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9:23-2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 찬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1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예수인 새벽 예마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새벽에 여러분들을 뵈니 즐겁고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길 소원합니다.
저는 오늘 히브리서 9장 23절에서 2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그리고 발견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은 바로 나에게 주어지는 생명일 것입니다.
그 생명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늘에 있는 것들을 사모합시다’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하늘도 창조하셨습니다.
무엇을 만들어 보려고 할 때, 저는 그 일이 어려운 일임을 매번 알아갑니다.
심지어는 설명서가 있고 그대로 따라하기만 해도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많더라고요..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기에 저는 아름다운 작품까지 바라지 않아도 모두가 보기에 좋은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더 크게 깨닫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셨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 볼 때 저는 종종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감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예를 들면, 하늘이 언제 가장 아름답습니까? 일출, 일몰 할 때도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하늘 그 자체의 아름다움은 비가 온 뒤에 드러납니다.
비가 내린 뒤 맑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그 아름다움에 고정이 됩니다.
그런 날 산에 올라가면 더 먼 곳 까지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공기가 좋은 것도 그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사모하며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은혜일 것입니다.
산에 오르면 더 놓은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는 일이 힘들어도 그 힘 듦을 사람들이 감수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들 때 하늘을 바라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개를 들 힘 조차 없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힘들고 지쳐 낙망할 때,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쉬우신가요?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고 해도 그 하늘은 어떻게 보입니까? 저는 그런 상황에서는 아름다운 하늘이 무조건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더라고요.
내 몸이, 내 마음이, 내 정신이, 그리고 내 영혼이 내가 힘들 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힘들 때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축 쳐진 어깨, 고개 숙인 모습으로 땅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땅에서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힘들고 지쳐)는 제목의 찬양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은 시인 이재왕의 시를 가사로 만든 찬양입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여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제가 고등학생 때 저희 교회 길 건너 편에 은성장로교회가 있었습니다.
목요일마다 찬양집회가 열렸는데, 집회 때마다 게스트들을 초대했습니다.
많은 게스트들이 초대가 되었는데 다 기억은 못하지만, 그 중에 나 가진 재물 없으나란 시를 쓴 송명희 시인도 있었고,
너는 내 아들이라는 시를 쓴 이재왕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정말 큰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재왕 시인은 네 살 때, 희귀한 질병인 근육디스트로피 진단을 받았습니다.
2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그 보다 13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젊은 나이인 33세에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었던 이재왕 시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아름다운 믿음의 시들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중증뇌성마비를 지닌 채 태어난 송명희 시인도 우리는 잘 압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그녀의 시입니다.
1963년에 중증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그녀의 삶은 정상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의 글을 보면 그녀는 일곱 살 때까 누워만 있다가 행여 업으면 목이 등뒤로 고꾸라져서 허리가 빠지는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구글에서 송명희 시인을 검색해보았는데 작년 6월 22일이 그녀의 60세 생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에 그녀가 쓴 시가 있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아픈 것도 감사합니다
아파서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없어져
주변을 더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병이 길고 깊으면 살고 싶은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감사합니다
삶에 애착이 없어서 비굴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마음이 세상에 없으니 세상보다 천국을 보고
땅에 연연하기보다 하늘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의사들이 죽는다고 하는 말을
수십 번 들어 별로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병원 믿고 살았으면
벌써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살면 기회고 죽으면 천국이라 감사합니다.
코로나 온 것 같은데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재왕 시인과 송명희 시인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웁니다.
감사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송명희 시인의 시에서 유독 눈이 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이 세상에 없으니 세상보다 천국을 보고
땅에 연연하기보다 하늘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송명희 시인을 생각하면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녀가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육체적 고통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질병은 그녀의 고백을 아주 강력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녀의 아픔을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겪었을 어려움, 고통, 그리고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우리는 그 시의 메세지가 아주 힘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습니까? 아니면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 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들으면 답을 하기 전 망설이게 되진 않습니까?
땅에 연연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습니까?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지 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 마음은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중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땅에 속한 사람인지 하늘에 속한 사람인지 늘 점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합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일 앞서 이루어진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죄를 없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 가운데 누가 나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을까요?
법정의 판사는 죄가 없는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죄는 인간의 관점에서 없어집니다. 자유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판결이 여러 이유로 잘못된 결정이라면 죄가 있는 사람이 무죄가 될 수도, 죄가 없는 사람이 유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그 판결이 잘못된 것이 드러나도 그 누구도 잘못된 판결에 대한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 판결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에게는 가혹한 일일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죄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정죄하며 그 책임을 지는 일이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는 대제사장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죄와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흠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문제를 초월해 계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 죄 위해 대신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라고 히브리서 9장 24절은 말합니다.
가슴이 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서신 것을 뜻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물론 저는 유대인들이 율법에 기록된 대로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양과 염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자신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단 번에 드려진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 히브리서 9장 23-28절의 말씀의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죄의 결과는 씁니다. 우리 삶을 흔듭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인간은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해산의 고통도 여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일을 하는 것과 해산의 고통이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자녀를 얻기 위해 필연적인 인간 삶의 조건이기에 우리는 그 수고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입니다.
그 만큼 죄의 결과는 무겁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 가장 귀한 선물을 우리가 값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주셨습니다.
공짜인 선물은 없습니다. 주는 사람이 값을 치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해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된 소식을 전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가 확인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이었습니다.

이재왕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은 말합니다.
“나에게 실망하여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예수인교회 식구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못 자국 난 그 손을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붙들며
하루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딸과 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셋째, 죽음 이후의 일을 기억합시다.

죽음은 명사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 남은 자들 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 만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살아 숨쉬는 자들 만이 죽어감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목격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진리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임을, 또 확인합니다.
누군가는 나는 죽지 않을 거야 죽고 싶지 않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말은 그저 메아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지 않는다고 해도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운명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정확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20대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를 갖게 됐습니다.
평생 치과를 한 번도 안 갈 정도로 건강하셨던 제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병원을 다녀오셨는데 백혈병(혈액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약 3개월 동안 병이 악화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한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온 몸의 근육이 점점 빠져나가서 나중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에 돌아가셨는데 저녁부터 숨을 쉬는 것이 점점 가늘어져 갔습니다.
호흡이 점점 약해져 갔고 생과 사가 교차하는 7-8시간 정도의 줄다리기 끝에 호흡이 멈추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처음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기 때문에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은 제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역사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20세기 세계 대전 중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인이기에 제게는 과거에 벌어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21세기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 가장 최근의 이태원 참사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주중에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들도 우리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경험하는 것은 직접적인 방법이든 간접적인 방식이든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예수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그의 믿음도 종이장처럼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현장은 두려움의 장소이고 모든 것을 깨뜨려버리는 사건입니다.
내가 베드로였어도 또는 도마였어도 나의 모습은 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중 히브리서9장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다른 말로 그것을 우리는 한 인간이 죽어가는 고통스런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종착지인 죽음이라는 사건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내가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경험하는 순간 이 땅에서 나의 삶은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진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이 증거하듯이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 이후의 일, 즉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일과 죽음이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임이 분명하지만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심판의 날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 우리가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알고 믿고 있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 딸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힘과 소망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의 후반부는 우리가 그 힘과 소망을 얻는 이유가 됩니다.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로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는 단 번에 드려지신 예수로 인해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수한 죄를 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모신 이들에게 내가 살아가면서 지은 죄들이 있을 수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언합니다.
이 말씀을 믿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구원의 기쁨과 확신 속에 하루를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라고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하늘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을 붙들고 기쁨 속에 살아가게 하소서
중보기도제목(선교지/모든 예배) 봄 학기 부터 미얀마와 AEU(온라인 수업)에서 공부하게 된 13명의 미얀마 청년들이 학업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도록
예수인교회 모든 예배에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비상하는 힘을 예수인들이 예배를 통해 얻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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