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상 8. 히 7: 1-10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서 발견하는 평화와 복

2023.01.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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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월 20일입니다. 벌써 2023년의 세 번째 금요일을 우리들은 맞이했고  시작하면서 새벽을 깨우고 있습니다. 새벽 예마에 나오신 모든 예수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넘쳐나시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길 기도합니다.”라고요.. 

 

세계의 인사말 중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인사말들을 알고 계십니까? 저도 생각해보니까 한 손을 펼치면 끝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사말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사들이 좋은 의미, 인사를 주고 받는 서로에게, 를 건넨다는 점입니다.  

 

한국어 인사 안녕하세요도 평안을 비는 말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도 밤새 평안한 쉼을 누리길 소원하는 말입니다. 영어 인사도 때마다 좋은 시간을 보내길 비는 것이고 그 동안 잘 지냈어라는 말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건네는 인사말 샬롬을 볼까요? 샬롬은 제가 좋아하는 인사말입니다. 평화를 비는 인사입니다. 제가 동부에서 공부할 때 다녔던 학교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는 인사도 Peace be with you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사 샬롬이 뜻하는 것처럼 그리고 제가 공부하는 동안 자주 했던 것처럼 여러분들의 삶에서 늘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저는 이 새벽에 히브리서 7장 1절에서 10절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세지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멜기세덱은 누구인가입니다. 히브리서 7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은 그 이름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이고 살렘 왕이 뜻하는 바는 평화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 의와 평화의 왕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에서 우리는 그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본문 히브리서 7장1-10절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정답을 이야기 한 사람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암송하시는 구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6장16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은 예수께서 17절부터 19절에서 다음과 같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니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알고 있는 바를 알려 주신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이름은 베드로이며 그 이름의 뜻처럼 내가 그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울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임을 선언하시고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 네가 그 열쇠로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이와 같은 복, 약속, 그리고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상황 속에서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며 약속을 하신다고 상상해 봅시다. 상상입니다. 상상이지만 여러분들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설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그런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믿음이 아주 좋다고 해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던 다미 선교회가 있었습니다. 1992년에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 저는 학교에 있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회색 빛이었고 비가 많이 내리는 스산한 가을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우리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 알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내가 하나님이고 내가 구세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미 선교회 이장림 목사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알고 계시다고 말한 그 날과 그 시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후에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의 믿음이 칭찬 받고 복을 받으며 하나님께 그리고 예수님께 인정받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고백한 것처럼, 물론 완전히 같은 신앙 고백의 문구는 아니지만,  우리는 예수가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의 제사장, 의의 왕, 그리고 평화의 왕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의의 왕으로,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예수인들이 되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가수 노사연의 노래 가운데 국민 가요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곡이 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만남이란 제목의 노래입니다. 인생에서 우연인 만남이 왜 없겠습니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또 한 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필연적으로 만나는 인연, 필연적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들도 물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연과 필연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더 마음이 끌리십니까? 인생은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있습니다. 우연 같은 필연도 있고 필연처럼 느껴지는 우연도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시각을 잃으신 한 어르신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길을 가고 계셔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댁이 어디신지 물어보니까 멀지 않은 곳이라 모셔다 드렸습니다. 집에 도착하니까 고맙다면서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거절을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니까 그 분께서 은퇴한 목사라며 제게 안수하시면서 축복 기도를 해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무려 28년 전의 일이기에 그 기억도 이제는 예전처럼 생생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연, 필연 우리가 경험하는 일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은 우리 삶에서 필연이라는 두 글자로 표현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난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난 이후에 어떤 경험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습니까?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우리에게 축복임을 그 말씀에서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 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얼마나 됐는지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면 많이 가진 사람일 수록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또한 적게 가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드리는 것은 내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희생과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주일에 저희 교육부 학생 스카이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스카이 아버지께서 저에게 즐거워하시며 스카이가 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스카이가 교육부 예배 드리러 오면서 자신의 용돈으로 헌금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것입니다. 제 마음에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찔렸습니다.  제가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늘 어머니는 주일에 교회를 먼저 가시면서 헌금할 돈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신 돈을 가지고 착한 어린이처럼 제가 교회를 가서 예배를 잘 드리고 왔을까요? 제가 많이 찔렸다고 말씀드렸죠.. 그 때 제가 스카이랑 비슷한 나이였을 텐데 한 동안 교회 대신 오락실을 갔습니다. 가서 헌금하라고 주신 돈으로 열심히 오락하다가 돈을 다 쓰고 나면 집에 돌아왔던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주일에 데이빗 고 성도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찔리던지 그리고 스카이의 믿음이 크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은 우리에게 필연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저도 그 때 일들을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우리에게 축복의 통로가 열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도 갖게 됩니다. 삶에서 내가 가진 것이 때로 부족해서 더 드리고 싶은 마음에 비례해 충분히 드릴 수 없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말씀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메세지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물질로부터 유혹이 찾아올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닌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축복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늘에서 땅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 주어집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하나님의 복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아래로부터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이 무엇인지는 우리 각자가 아는 것을 전제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믿음을 잃지 않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올 한 해 동안 크게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산상 수훈 설교에서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설날이 코앞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는 설 명절에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올해 어떤 복을 받으시길 원하십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우리 삶에 임할 것입니다. 또한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되심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여덟가지 복 – 천국을 소유함, 위로를 받음,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 배부르고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받아 누리시는 예수인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기도문을 여러분들과 나누며 1월 20일 금요일 새벽예마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이 기도문 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길 원하는 나의 간절한 마음과 내가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내가 살아갈 때 나로 인해 이 세상에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평화 그리고, 그로 인해 열매 맺어지는 복을 흘러보내는 평화와 복의 통로가 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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