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상 6 히 5:11-14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2023.01.18 22:22
예수인교회
믿음의 비상 6 히 5:11-14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찬96/통94 예수님은 누구신가?
한 신문기사에서 교회를 유치원에 비유했습니다. 유치원은 하루도 바람잘날이 없습니다. 시끄럽고 싸움이 잦고 말을 잘듣지 않습니다. 어린이들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목사어린이, 장로어린이, 권사어린이들이 교회를 시끄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이탈하는 유대인에 대해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로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적 성장을 이룰수있을까요?
첫째 영적성숙을 위해서는 “올바른 기초를 갖어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 당신들은 지금 교사가 되야할 정도의 신앙연륜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사실 이시대 교회에도 동일한 질문입니다. 신앙생활 1년이든 10년이든 30년이든 아니 오히려 이제 막 신앙생활 처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더 뜨거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배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고급 신앙교육을 받으려고 합니다. 선교도 가보고 여러 사역이나 봉사도 많이 합니다. 물론 다 중요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12절에 영적 기초가 다시 필요함을 말합니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2002 월드컵준비를 하면서 처음 히딩크감독이 한국에 왔을때 한국 축구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기술과 테크닉이 유럽처럼 뛰어나게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문제의 원인을 기술과 테크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초체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2시간의 경기동안 탄탄한 기초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계속 뜀박질만 시켰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신앙의 기본인 구원의 확신과 영원한 생명이 날마다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늘 유지되려면 필요한게 있습니다. 바로 신앙의 기초면서 중심이 되는 말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잘되는 사람은 탄탄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통해 영적성숙을 이루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영적성숙을 위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13절에는 영적성장을 위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영적 어린아이다 보니 올바른 가르침을 받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가르침”이란 원어표현을 보면 “말씀을 경험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의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어려움, 억울함, 핍박, 모멸감과 수치등의 아픔을 통과하면서 그 말씀을 견뎌내는 배움을 바로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표현한것입니다. 한 기독교 TV에서 어느 장로님이 동성애 관련 법안과 동성애 결혼에 대해 시위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게 아니라 찬성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녀가 동성애자인데 그 자녀가 세상을 살며 자유롭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가르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좋은 환경, 좋은 여건에서 편하게 생활하면 좋겠지만, 진짜 성숙한 사람들을 보면 온실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수많은 고초와 아픔과 눈물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어려운 고초중에 눈물중에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견뎌내며 다듬어져 가는 성숙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가르침”이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성경은 우리안에 예수의 9가지 열매들이 나타난다는것을 말합니다.
세번째 영적성숙을 위해 “ 선악의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4절은 정말 중요한 결론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각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말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인간은 원래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불완전 하기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안된다고 했던건데 따먹으면서 불완전한 인간이 선악을 판단하게 됬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갖고 노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얼마전에 신문에 6살짜리 아이가 권총으로 자기 선생님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우발적 범죄로 알았지만 사실 계획적 범죄가 되어 이 문제를 놓고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수준에 맞지 않는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인간은 잘못된 2가지 판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적 판단입니다. 인간의 선악기준은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나에게 이익이 아니면 악입니다. 국가의 선악도 기업의 선악도 가정의 선악도 전부 기준은 “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그치질 않습니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나라간이든 어디나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으며 싸우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운동회를 했습니다. 운동장에 울려퍼지는 응원가가 이것입니다. “마귀들과 싸울찌라 죄악벗은 형제여 고함치는 무리들은 흉한 적병아닌가?” 같은 교회 식구들끼리도 마귀를 만드는 것이 우리입니다. 또 하나는 “미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식성은 부모님을 따라갈 때가 많습니다. 부모가 식사하면서 맛있다고 말하면 아이도 그것이 맛있는 줄압니다. 그런데 맛없다고 말하면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선입견이 생기면 판단도 삐뚤어집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구원은 반드시 필요한것인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분별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분별력을 롬12:1-2에서 “먼저 너희 몸을 먼저 드리면 마음이 변화되어 분별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예를들어 선교지를 가면 은혜받는걸 잘알지만 누구도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여 가보면 “아 이것은 좋은거구나 이것은 나쁜거구나”등의 하늘의 분별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요리를 배울때 요리책을 보며 이론만 배운다고 요리사가 되는게 아니라 요리를 직접해보며 그 맛을 봐야 요리사가 되듯이 성경은 우리에게 “맛보아 알지어다”(시34:8) 말합니다. 주님을 더 경험하고 이해하며 순종을 통해 성숙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맛보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예수를 더 깊이 알고 그분을 통해 성장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수: 다음세대) 교육부/유스/청년을 위해서, 우리의 자녀세대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세대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