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새 3. 창 37:6-7 비상하는 꿈을 꾸라
2023.01.05 09:11
예수인교회
비상하라 3 창37:6-7 비상하는 꿈을 꾸라 찬 490/통542 주여지난밤 내꿈에
신년특새 3째날입니다. 여러분은 비상하고 계십니까? 제가 어제 특새가 마친후 그런 나눔을 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비상하고 싶니? 학업, 신앙, 능력, 지혜? 그것이 무엇이든 새벽에 나올때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기간에 각자의 삶에 필요한 말씀과 지혜를 주실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이 저를 일으키고 교역자들과 리더십들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을 일으키는 신년의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부담스럽지만 기도할때 마음에 감격이 있습니다. 꿈이란 그런것입니다. 꿈을 꾸고 그것에 목표를 설정할때 역동적인 힘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창1장에서 천지를 창조할때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반복합니다. 왜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기전에 꿈꾸고 계획했던것입니다. 창조물이 그것과 일치된걸 보며 좋았던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먼저 꿈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열국아비의 꿈을 주셨고, 모세에게 출애굽의 꿈을 주셨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에게도 꿈을 주십니다. 그런점에서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비상한 꿈이 있기를 축언드립니다. 그러기 위해 셋째날 비상하는 꿈을 꾸려면 필요한 두가지를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비상한 꿈을 꾸려면 “꿈을 품어야 합니다.”
꿈꾸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꿈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꿈을 품는다는 것은 “마음에 새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꿈을 주실때 꿈을 반복시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오늘 본문의 요셉에게도 처음에는 곡식단의 꿈을 주셧고 뒤이어 9절에 하늘의 별과 해와달의 꿈을 반복시켰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에게도 흉년에 대해 반복적으로 꿈을 주시고, 느브갓네살에게도, 꿈을 반복시킵니다. 왜일까요? 처음은 우연일수있다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꿈을 또 꿀때 예사롭지 않아서 마음에 새기기 때문입니다. 비상하는 삶의 시작은 꿈을 마음에 새기고 구체적으로 실천할때 시작됩니다. “1953년, 미국 예일대 졸업반 학생들중 3%가 구체적인 인생의 꿈과 목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22년후 그때, 꿈과 목표를 썼던 3%의 학생들은 나머지 97%의 학생들보다 더 많은 꿈과 목표를 성취한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꿈을 품은자와 품지 않은 자의 차이입니다.
요셉은 이 꿈을 꾸고 정확히 12년후 애굽의 총리로 형들을 만났을때 과거의 꿈꿨던걸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가 무려 12년간 수없는 산고의 세월중에도 하루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긴걸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결국 비상한 꿈의 주인공이 됩니다. 왜냐면 비상한 꿈속에는 몇가지 하나님의 초월적 힘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나이를 초월하게 해줍니다.” 어떤일을 할때 나이가 핑계일때가 많습니다. “청년들은 너무 어려서 못한다. 노인들은 너무 많아서 못한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꿈을 꿀때 나이가 85세였습니다. 다니엘과 요셉과 에스더는 10대에 부름받았고, 모세는 80세였습니다. 꿈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또 하나 “한계를 초월하게 해줍니다.” 사람마다 갖가지 한계를 갖고 살아가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99세에 아기를 낳습니다. 여호수아는 태양을 멈추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켰습니다. 꿈을 가진자는 한계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과거를 초월합니다.” 모든 인간은 과거에 영향을 받습니다. 어제일에, 작년일에 자라온 과거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꿈의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영향을 받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동안 남아공 감옥에 갇혀 수많은 학대와 모멸감을 받앗습니다. 감옥의 백인 교도관은 그에게 소변을 뿌리며 “당신은 여기서 죽을거야”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와 쓴뿌리를 품지 않고 오히려 흑인과 백인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나는 한번도 내가 감옥을 나갈수 없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자유인으로서 발밑에 풀의 감촉을 다시 느끼고 햇볕 아래 걷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그가 품은 꿈대로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꿈은 꾸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그것을 마음에 품고 날마다 생각하며 상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품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큰 꿈을 품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드온은 원래 “용사”가 아니였습니다. 대적들이 무서워서 구덩이를 파놓고 몰래 밀을 타작한 겁쟁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도다” 그가 한거라곤 그 꿈의 말씀을 믿음으로 품고 순종한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 큰 꿈을 주십니다. “큰 용사여 일어나라! 내가 너를 가정과 자녀를 위해 직장과 학교를 위해 이시대의 기드온으로 쓰겠다” 이꿈을 “아멘!” 나의 꿈으로 받으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몽당연필을 아시죠. 작고 보잘것없지만 누구의 손에 붙들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훌륭한 시인의 손에 불들리면 훌륭한 시가 나옵니다. 뛰어난 학자의 손에 붙들리면 뛰어난 논문이 나옵니다. 영감있는 목회자의 손에 붙들리면 거기서 사람살리는 설교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얼마나 좋은 환경 능력, 건강,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더중요한것은 우리가 누구의 손에 붙들려서 무슨 꿈을 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번 특새에 막연한 축복보다는 구체적인 비상의 꿈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품고 한해동안 우리 가정과 일터와 목장에서 꿈을 펼쳐나가는 비상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비상한 꿈을 꾸려면 “꿈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초에 멋진 꿈을 꾸며, 설레이는 삶을 기대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오히려 큰 낙심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왜냐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모든것에는 댓가가 있습니다. 꿈이 크다면 그댓가도 크다는걸 예상해야 합니다. 요셉을 보면 크게 2가지의 꿈의 댓가가 나옵니다. 하나는 “끌려다님”이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한마디로 끌려다님의 생애였습니다. 구덩이로 끌려갔고, 이집트 노예로,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끌려다님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을 보면 평생 이리저리 끌려다녔습니다. “험악한 인생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과 모세는 편안한 왕궁에서 갑자기 광야의 끌려나갔습니다, 다니엘과 수많은 선지자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왜그럴까요?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요21: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주님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꿈과 비상에 다가설수록 내가 원치않는일 원치않는 곳으로 끌려다니게 될것을 말합니다. 왜일까요? 내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정말 “맘대로 되는게 일도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뭐가 잘풀린거죠. 요셉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됫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헨리나우엔은 이 18절의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크리스천리더십은 “이끄는게 아니라 이끄심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면, 내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목회가 그렇습니다) 늘 하고 싶지 않은 일 투성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혹사당하기 일수입니다. 어떤분은 그렇게 질문합니다. 안하면 되잖아요. 맞습니다. 저도 안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육적자아가 영적거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땅의 사람이 비상하는 방법입니다. 악동뮤지션(찬혁/수현)의 아버지 지성근 선교사님이 남매를 키우며 꿈을 이루기 위해 3가지 일을 가르쳤답니다. 그것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모두 “하고 싶은일”을 하고싶지만 그일을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는거죠. 정말 중요한 명언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꿈꾸는 일”을 하려면 “오늘 해야할 일”을 꾸준히 할때 그 꿈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 학교, 또는 목장과 공동체에서 어떤일을 하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비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그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일보다 내가 해야할 일에 이끌릴수 있는 비상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바랍니다. 또 하나의 꿈의 댓가는 “유혹과 시험”입니다. 꿈꾸는자는 항상 유혹과 시험이 기다립니다. 마귀는 큰 꿈을 품은 사람을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밑바닥에 있을땐 건들지도 않다가 보디발의 집에서 정상에 오르자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사람은 낮아질때보다 높아질때, 일이 안풀릴때보다 잘풀릴때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주로 2가지인데 하나는 “경계선을 흔듭니다”. 창세때 마귀는 선악과를 따먹을때 “정말 그러하냐?” 경계선을 흔듭니다. 요셉에게 보디발 아내가 말합니다. “이곳에 너와 나뿐이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이 은밀한 유혹에 넘어집니다. 요셉은 8-9절에 경계선이 명확했습니다. 또하나의 유혹은 “억울함입니다.” 억울한것 잘 견디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잘사용하는것이 억울함입니다. 요셉은 억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형들에게, 보디발의 아내와 보디발에게, 감옥의 죄수들에게 계속 억울한일을 당합니다. 보통사람같으면 상처가 올라와 자포자기 할텐데 요셉에게는 그억울한 상처가 반복되는데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흔들림없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합니다. 인도의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폭력을 당하며 스스로 비폭력에 대해 흔들릴때마다 원수에게 왼쪽뺨을 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요셉은 억울한 상처가 올라올때마다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상처가 꿈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중요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것은 사실 이 억울한 감옥에 들어왔다가 술관원의 꿈을 해몽해줬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감옥에 들어오지 못했다면 절대로 왕앞에 설수없었을것입니다. 억울함이 꿈의 재료요 발판이 된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오늘도 갖가지 죄와 억울함으로 우리의 마음과 꿈을 무너뜨린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억울함을 재료 꿈을 만들어가시는 분입니다. 정말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시는 비상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