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96 행 28:23-31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

2022.12.23 07:1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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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96   행 28:23-31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사람    찬 191장/ 427장 내가 매일 기쁘게

  신약의 유일한 역사서가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시대부터 바울때까지 복음이 어떻게 교회를 만들었고, 교회는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기록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마지막장 마지막절인 31절이 미완료 문장으로 마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현대 교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사도행전의 29장을 써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사도행전의 29장으로 이어질수있는지 바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찿아봅시다.

첫째 사도행전 29장은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써갑니다.” 23-29

  이것은 성경전체에 흐르는 주제입니다. 23-29절까지 요약하면 바울은 어제 만났던 유대인들을 다시 초청하여 온종일 복음을 전했는데 늘 그렇듯이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로 나누어 졌습니다(24절) 이걸보며 바울은 안타까운마음에 이사야서 6:9 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사야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강팍한자는 깨닫지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방인을 위해 복음전파자로 부름받은걸 이야기 합니다.(29절) 그렇다면, 바울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강팍한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왜 계속해서 가는곳마다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을까요? 여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11:11 롬11: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방인전도를 맡겼지만 사실은 유대인들의 질투를 통해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를 구원할 계획을 가졌다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17장의 잃어버린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에서 집나간 둘째아들만 기다린게 아니라 집을 돌보고 있던 큰아들도 돌아와야 함을 강조한것입니다. 바울은 이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포기하지 않은것입니다. 간혹 어떤목장이나 목원은 계속해서 VIP를 품고 전도에 주력하는 목장이 있습니다. 어떤 목장이나 성도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안에 은혜가 흘러야 함을 강조하며 전도는 나중으로 돌리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것이 맞을까요? 정답은 둘다 맞습니다. . 사도행전의 교회는 영혼구원을 하며 알아갔고 알아가며 영혼을 계속해서 구원해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입니다 지금 땅끝선교를 위해 성경을 번역하는 팀들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명이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언어로 번역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약 20-30여년 밖에 안남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다시오실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분이 계십니다. “저도 젊었을땐 마지막 시대라고 열내며 전도했는데 적어도 종말은 내 때에 안올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서 쓸데없이 낭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분의 말이 맞다면 왜 사도들은 목숨걸고 복음을 전했을까요? 왜 종말이 그렇게 많이 남았는데, 바울은 그토록 바쁘게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그리고 왜 주님은 그런 바울에게 교회의 역사를 써나가도록 맡겼을까요? 그걸볼때 하나님은 이시대에도 사도행전의 29장을 써내려갈 교회와 성도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사도행전 29장은 “한계를 넘어가는 사람이 써나갑니다.” 30-31

    바울은 늘 복음의 한계를 넘는 사람이었습니다. 풍랑을 만나도, 누명을 써도, 돌에 맞아도, 깊은 감옥에 있어도 복음의 빛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보십시오. 행28:30-31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해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찿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 무슨말이죠 2년동안의 유배지가 유배지가 아닌것입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것입니다. 자기가 못나가니까 사람들이 찿아오게 만든것입니다. 당시 황제의 근위대 병사들이 돌아가며 바울을 지켰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들이 또다른 사람들을 데려오고 나중에는 약속을 잡고 와야 하는 상황이 된것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이 바쁜 일정에 주야로 주옥같은 서신서들을 썻습니다. 빌립보서 골로세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놀랍습니다. 어찌보면 꽉막힌 한계의 상황속에서 바울은 가장 빛을 발하는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가난을 만날때, 죄인을 만날때, 질병을 만날때, 각종 한계를 만날때, “두나미스” 폭발하여 한계를 넘어가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이땅의 모든 성도와 교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더 이상 전도는 안된다, 교회상황도 이미지도 안되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아닙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가난과 핍박과 박해가 넘칠때 항상 부흥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언제 성장했죠. 가장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울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때, 새벽마다 아이들을 들처없고 차가운 맨바닥에 어머니들의 기도와 권사님들의 눈물의 부르짖음으로 한국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의 진짜 문제는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우리안에 헌부대를 터뜨리는 복음의 폭발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유배지에 살아갑니다. 질병의 유배지, 나이의 유배지, 취미의 유배지, 재정의 유배지, 관계의 유배지, 상처의 유배지등… 그래서 만날 사람이 없거나 전도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한 권사님이 65세였는데 말기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근데 그 침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한것이 24시간 교대하는 모든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간호사 양반, 내몸은 죽지만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아. 왜냐면 내안에 예수님이 계셔, 예수님을 꼭 믿어”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병원에 건강한 사람이 와서 전하는 것과 죽음의 한계를 경험하는 사람이 전하는 것과 어느것이 더 강했을까요? 여유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것과 도저히 전할수없는 꽉막힌 한계속에 전하는 사람과 어느 복음이 더 강력할까요? 복음은 한계를 만날때 더 역동적으로 터져나갑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처한 이 유배지가 복음을 더 영화롭게 할수있는 찬스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2023년 비상하는 거침없는 복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럴려면 오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누구든지 품고 어떤 원수나 죄인이 들어와도 품고 기도하며 한계를 넘어 사도행전의 29장을 써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사도행전의 29장을 우리가정과 목장과 교회를 통해 이어가게 하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품고 나아갈수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와 모든 예배/성탄감사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일/새벽/목장/ 성탄감사예배에 VIP들이 함께 할수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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