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95. 행 28: 17-22. 진정한 축복...그것은 사명입니다.
2022.12.22 10:37
예수인교회
행 28: 17-22. 진정한 축복…그것은 사명입니다. 찬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마지막 부름의 사명지인 ‘로마’로 들어가는 부분으로 ‘사도바울’의 ‘로마’입성은 사도행전 전체의 목적과 성격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평범한 한 사람이 ‘로마’에 들어가는 장면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함께 하셨고, ‘사도바울’의 ‘로마’입성을 통해 복음이 전 유럽을 흔들게 되고, 유럽의 역사와 운명을 완전히 바꾸게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그 시발점이 바로 오늘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에게는 드디어 하나님의 사명의 완성지였던 ‘로마’에 들어감으로써 그에게는 가슴 벅찬 운명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에게 최대의 축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성공과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믿고 또 영혼 구원의 사명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성도의 삶의 최고의 목적은 세상 삶의 풍요가 아니라, 주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부터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흘 뒤에 바울은 그 곳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겨레와 조상들이 전하여 준 풍속을 거스르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죄수가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로마 사람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로마 사람은 나를 신문하여 보았으나,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놓아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이 반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내가 황제에게 상소한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던 신분이 높은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여기 ‘로마’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 절부터 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말씀을 헬라어 원어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의 학식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의 특권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코 복음에 대해서는 양보나 타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겸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또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했습니다. 심지어 제사 음식을 먹는 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일들이 ‘사도바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었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해도 오직 복음만 전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용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 증거보다는 자신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남들에게 높임 받고, 대우 받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신 영혼구원의 사명보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하는 참된 성도의 삶은 자신이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성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의 삶에는 반드시 사명도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것은 그 삶에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 또한 감사함으로 감당하겠다는 믿음의 고백과 삶의 실천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본문 20절부터 2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여러분을 오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유대로부터 당신에 관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동포들 가운데서 아무도, 여기에 와서 당신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거나 소문을 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당신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종파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어디서나 이 종파를 반대하는 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로마의 높은 신분의 유대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소망’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복음을 전할 때, 한 가지 반드시 우리가 버려야할 선입견을 한 가지 깨달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을 핍박하고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전도가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이 복음을 들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전하는 자의 전도의 태도가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복음을 전해도 안 될 것이라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보지 않고, 헌신해 보지 않고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시는지는 성령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복음 증거의 역사는 이 사도행전 28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도행전의 복음의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쓰여 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 복음의 역사가 믿음의 성도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고 또 세상에 증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오늘도 내 삶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