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89. 행 26: 24~32.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2022.12.13 11:0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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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6: 24~32.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찬 384(나의 갈길 다가도록)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다 잡힌 ‘사도 바울’이 ‘아그랍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사도바울’은 자신의 죄 없음을 증명하고 석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1절, 32절을 보면 왕과 총독 그리고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가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석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이 이 기회를 자신을 위해 잘 살렸다면, 그는 무죄로 풀려 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소중한 기회를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담대하게 그 시간을 복음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에 총독 베스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베스도가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고 말하였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얼마나 놀랐으면, 자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오직 예수만을 외치는 바울에게 ‘베스도 총독’이 한 말입니다.

헬라어로는 ‘마이네’, 영어로는 ‘마니아’라는 이 ‘미쳤다’는 놀라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이미 24장에서 ‘더불로’라는 사람이 바울에게 ‘염병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장면에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부분이 오늘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하면, 병자가 고침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장면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행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충만도, 성령의 능력도, 사도행전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핵심은 바로 오늘 본문, 즉 예수에 미친 사람들, 예수쟁이들이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쟁이, 예수에 미친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그 예수에 미친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 바로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8절’에 분명하게 성령의 권능을 받는 목적이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과연 나는 예수쟁이로 살고 있는가?’, ‘온전한 예수에 미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더 놀라운 것은 감옥에 갇혀 심문을 받고 총독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던 ‘사도바울’은 본문 29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사도바울’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선언’을 말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긍지입니다.

믿음의 자부심입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서신’의 여러 곳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께 미친 것에 대해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4장 16절’에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고,

또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으며,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 받으라’는 것은 ‘거울 앞에 서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내가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있는 사람도 역시 나인 것처럼, 그 행동과 마음을 똑같이 행하여, 자신이 누린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감격과 기쁨을 똑같이 누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그리스도에게 미친, 예수쟁이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에 미치고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자랑이 넘쳐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은혜와 구원의 복음을 제대로 체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99%가 아니라 100% 그 은혜의 감격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전적인 그 은혜로 자신이 이제는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은혜와 생명의 천국 백성임을 확신하며, 그 기쁨과 감격 속에서 ‘나는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왕자가 왕궁 내에서 지내는 생활이 너무 따분해서 아무도 몰래 왕궁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 세상 구경하니까 너무 재밌어서 그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너무 멀리 가버려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날씨가 어둑어둑해지고 왕궁을 찾는다는 것이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겁니다.

완전히 깜깜해졌습니다.

‘큰일 났다. 어쩌면 좋을까?’ 당황하는데 마침 저기 불빛이 보입니다.

가보니까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납니다.

그래서 ‘여보세요.’ 노크를 했습니다.

안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뉘시오.’

왕자가 대답합니다.

‘예!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 자부심이다.”

왕자의 자부심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현명함이나 스스로의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과 자신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통한 주님과의 전적인 구원의 관계 가운데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대한 은혜와 감격을 누린 우리는 ‘예수에 미친 사람’, ‘예수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에 미친 사람’, ‘예수 마이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그 기쁨과 감격 가운데 성령충만을 받고, 예수에 미친 예수쟁이로서 내 삶의 현장에서 영혼구원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성령충만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분별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목장 내의 사탄이 주는 영적 시험과 방해가 있다면 믿음으로 이겨 승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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