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85. 행 24:22-27. 인생의 겨울 뒤에 있는 하나님의 봄.

2022.12.06 10:2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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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22-27. 인생의 겨울 뒤에 있는 하나님의 봄. 찬 430장(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얼마 전 한 글로벌 여론 조사 기관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강한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1위가 바로 미국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나라에서 반드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 사람은 어디를 가서든지 늘 당당하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 하나님 나라, 천국 백성인 우리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 있을 때,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과 섭리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또한 환란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특히 오늘 본문에서 총독 ‘벨릭스’와 자신을 죽이려는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 천국 백성은 인생의 겨울이 올 때, 반드시 그 뒤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봄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인생의 겨울 뒤에 있는 하나님의 봄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믿음의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봄을 소망하는 성도에게 복음을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의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벨릭스는 그 ‘도’와 관련된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당신들의 소송을 처리하겠소” 하고 말하고서, 신문을 연기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벨릭스’는 ‘도’ 즉 ‘복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복음은 지식적인 복음,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안다’는 의미는 우리가 지식적인 정보를 가지고 얘기하는 정도의 “안다”가 아닙니다.

이 의미는 “만나고 경험하는 친밀한 관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의 형식을 보면 이 단어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의 지식으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와 경험’이 있어야 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아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과 개인적인 깊은 만남과 교제 속에서 오늘도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겨울 뒤에 하나님의 봄을 소망하는 성도는 ‘고난 속에 있는 자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23절을 말씀을 보면 “그리고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지들이 돌보아 주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감옥에 갇힌다는 것, 특히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더구나 그 억울함이 빨리 풀리지 않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면, 그것을 고난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이 2년의 세월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즉시 무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나왔다면, 그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기다리고 있던 40명가량의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더 큰 핍박과 박해를 당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26장’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힌 지 2년이 지났지만, 그을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2년 동안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던 것은 우리가 전 시간 살펴본 바와 같이, 오히려 그가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2년 동안 감옥에 있게 하신 것은, 고난이 아니라 바로 ‘사도바울’을 위로하시고, 쉬게 하시며, 또 새 힘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에게 세상의 고난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이 아니라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의 문제는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상황과 환경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고난으로 끝나지만,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소망이 되고, 기대가 되며, 결국에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닥칠 때,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바라보며, 그것을 통해 이뤄 나가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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