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84 행 24: 14-21 부활에 관한 몇가지 문제

2022.12.02 12:5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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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84 행 24: 14-21 부활에 관한 몇가지 문제   찬 288/204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늘은 지금까지 계속되던 재판에 대한 바울의 변론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이 트집잡던 내용은 “소동죄”와 “이단시비”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소동을 일으킨 적이 없었고, 이단으로 하나님을 부인한적이 없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죽은사람들에 대한 부활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행23:6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파 사람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킨것입니다. 사실 부활에 대한 문제는 그때만 아니라 현대 신앙생활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은 부활에 관한 몇가지 문제를 정리해봅시다.

첫째 “부활이후에도 찾아오는 두려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모든 두려움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이긴 사건입니다. 이것을 믿는것이 신앙의 첫걸음인데 과연 우리는 이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했을까요? 제자들을 살펴볼까요? 요 20장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때 모든 제자들은 유대인을 피해 각자의 집에 숨었는데 성경은 “창문과 모든 문을 걸어 잠궜다”고 표현합니다. 당시 표현을 자세히 보면 밖에서 걸어잠근것입니다. 마치 안에 아무도 없는것처럼 꾸민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두려운 상태였는지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후에는 어떠했을까요? 행1장에 예수님이 승천하자 그들은 또 다시 마가다락방으로 숨어들어가 10여일을 나오지 않고 기도만 합니다. 또 다시 두려웠던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표현을 무려 367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말은 우리의 인생에 두려움과 걱정은 뗄수없는 문제란걸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는 왜 우리는 부활로,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해주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질병과 돈과 상처와 진로등의 문제를 만날때 여전히 두려움에 빠지는 걸까요? 이것에 대해 리디머교회의 원로인 팀켈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모든죄에서 해방되었지만, 과거에 죄인이었었기에 우리의 시선은 항상 죄에 자동적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다” 즉 누군가 내이름을 부르면 자동반사적으로 쳐다보듯 두려움이 찾아오면 자동적으로 그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바람을 피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예쁜 여자가 시선에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눈이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안그럴것 같지만 심수봉씨의 노래처럼 “남자는 다그래!” 입니다.  근데 간혹 안넘어가는 남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눈이 돌아가려는 순간에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수고하고, 세상에 나만 사랑하는 유일한 내 사람, 이런 아내 불빛이 머리속에 딱 켜지면 “아유 내가 뭘보는거야” 시선을 돌립니다. 이렇게 아내를 계속 묵상하면서 바람피울수있는 남자는 없을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람을 핀다?” 이것은 “turn off the wife” 아내에 대한 생각을 딱 꺼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에 대한 생각을 꺼버리고 살아갈때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에게서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라고 말합니다.(히12:2)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싸움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부활의 증인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한번 더 봅시다. 행24:21 다만 나는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관련된 문제 때문입니다. 하는 이 한마디 말을 부르짖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당시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말이어도 모든 신약성도들은 부활의 소식을 가르치고 전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초대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는가?”였고, 그 부활의 주님을 전해야 할 책임”야 했기 때문입니다.(행1:22) 그래서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들은 예수를 직접 보았고, 바울은 환상을 통해 만났고, 다른 성도들은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만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것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음성도, 기적도, 직접 만나본 사람도 전혀 없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될수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환상이나 음성이나 기적을 한번 만 경험하면 내가 믿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 증거와 분명한 확증”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구약의 말씀입니다. 당시 신약교회 성도들에게는 신약성경은 아예없었고, 구약도 랍비들을 통해서 전달받는게 다였기에 그저 눈으로 보거나 사람들이 구두로 전달하는 걸 듣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신뢰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예를들어 내가 아주 중요한 사우디에 있는 바이어를 만나서 10만개의 신발을 수출합니다. 얼굴을 보면서 음성을 들으며 10만개 다 살테니 사우디로 보내랍니다. 감사하죠 근데 이렇게 직접 만나서 구두로 계약을 하는게 믿음이 갑니까? 아니면 못만났는데도 서로의 내용을 문자로 적어서 세부조항에 법적 조항까지 꼼꼼하게 적어 넣고 서로 싸인을 한 계약서가 더 믿음이 갑니까? 당연히 문자로 분명하게 적은 계약서를 더 신뢰하죠. 우리는 그분을 베드로나 사도들처럼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바울처럼 정오의 빛과 같은 체험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전보다 더분명하과 확실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왜냐 그때는 없었던 정확한 신구약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손에 쉽게 들려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옛계약 새계약 계약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빼도박도 못하는 계약서입니다. 거기다 지금은 요엘의 성령시대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 시대에 직접만나서 가르쳐주어도 제자들도 못알아 듣고 믿지 못했어요 근데 지금은 누구라도 조금만 원하면 애들도 다압니다. 유투브를 보세요 누구라도 말씀의 쉽게풀고 설명 이해가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시대보다 더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겁니다. 오늘도 이 성육신이 된 분명한 신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복된 한주 되길 바랍니다.

셋째 “부활의 상처 문제” 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활의 몸은, 영광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할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다시 부활하셨을때 손바닥의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중에 부활할때 몸의 장애나 상처를 갖고 부활한다면 어떨까요? 눈에 보이는 상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도 고스란히 갖고 부활한다면 그것이 영광되고 아름다울까요? 그런 부활이 사모될까요? 그렇지 않을것입니다. 왜냐면 신앙생활할때 가장 두려운게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때문에 사역을 내려놓고, 상처때문에 미워하고 상처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런 상처들이 부활할때 그대로 함께 부활한다면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상처에 대한 잘못된 인식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신약교회 성도들은 이 상처를 아파하거나 회피하기 보다는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갈6:17) 왜냐면 신앙생활하며 당하는 고초와 아픔과 눈물의 상처들은 내가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어떤 희생까지 치렀는지를 말해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일수록 그만한 댓가가 필요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절대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수고와 말 못할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목장도, 교회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까보면 뼈에 사무치는 고통과 새벽마다 사무치는 눈물의 기도가 쌓여 이루어지는 것들인 것입니다.  저는 개척목회를 하며 “심장 협심증”을 갖게 됬습니다. 처음에는 저주스럽고 이것때문에 사람들이 밉고, 사역을 싫어지고, 주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중에 주님앞에 설때, 주님께 내 심장을 보여주며 내가 이만큼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주님의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하고 자랑할수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받은 고초와 수많은 아픔과 상처들을 자랑했던것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이 모든 여정을 마치고 천국에 입성할때 이땅의 사람들에게 그동안 입고 있던 갑옷과 무기와 모든 물건들을 나눠주며 “천국에는 이런것들이 더이상 필요없습니다.” 말하며 딱 한가지 내가 가지고 갈것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내몸의 상처”라고 말합니다.내가 주를 위해 살면서 순례의 길을 살면서 내가 주님을 위해 받았던 상처와 그 자욱들은 유일한 훈장이며 주님께 보여줄 가치라고 말합니다.” 주님 다시오실 그때에 주님은 안아주시며 그럴것 같습니다. 니손을 보니 너도 영혼들 때문에 못자국이 잔뜩 있구나 옆구를 만지시며 너도 참 많은 고통을 당햇구나.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영혼들을 오래참고 나를 위해 수없는 눈물과 기도로 살아주어 정말 고맙구나. 저와 여러분이 이 한마디를 위해 오늘도 땅을 살지만 여전히 하늘의 상급을 바라며 걸어가는 이땅의 순례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부활의 증인으로 수많은 두려움과 걱정의 문제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상처를 자랑으로 만들어가는 부활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모든 예배/ 성탄 감사예배) 15곳의 선교지와 모든 주일예배와 성탄예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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