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83. 행 24: 1-9. 복음 바이러스!

2022.12.01 07:3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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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 1-9. 복음 바이러스! 찬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전 시간 로마 군인들에 의해 붙잡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후송되게 됩니다.

그런데 ‘가이사랴’는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진 도시로 ‘헤롯’이 만든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총독 ‘벨릭스’에게 후송된 ‘사도바울’은 거기서 세 번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첫 번째는 ‘벨릭스’총독에게, 두 번째는 ‘벨릭스’의 후임이었던 ‘베스도’에게, 그리고 세 번째는 ‘아그립바’왕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24장은 ‘벨릭스’총독에게 재판을 받는 기록이고, 25장은 ‘베스도’에게, 그리고 26장은 ‘아그립바’왕에게 재판을 받는 기록입니다.

그럼 1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닷새 뒤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몇몇 장로와 더둘로라는 변호사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옮겨 가는 동안 그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하자, 이제는 ‘가이사랴’로 와서 ‘사도바울’을 고소하면서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도바울’을 세 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 5절부터 9절의 내용입니다.

본문 5절부터 9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입니다.

그가 성전까지도 더럽히려고 하므로, 우리는 그를 붙잡았습니다.

총독님께서 친히 그를 신문하여 보시면, 우리가 그를 고발하는 이유를 다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 사람도 이에 합세해서,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

제사장들과 변호사 ‘더둘로’가 고소한 ‘사도바울’의 세 가지 죄목은,

첫째는 ‘유대인을 소란케 했다’는 죄목입니다.

둘째는 ‘사도바울이 바로 나사렛 도당의 우두머리’라고 고소합니다.

셋째는 ‘사도바울이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변호사 ‘더둘로’의 고발 중에 눈여겨 볼 말은 바로 “이 사람은 염병 같은 자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염병’은 당시 무섭게 유행하던 전염병 페스트를 말합니다.

사실은 이 말은 바울을 비난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수에게 미쳤던 바울의 힘, 복음의 능력을 가장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염병은 무서운 세력으로 전염이 됩니다.

삽시간에 온 동네를 휩쓸고 전염이 됩니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도 이 바이러스의 전염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복음의 능력이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은 염병처럼 아시아에 번져 갔고, 유럽에 영적인 불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믿음의 백성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즉 믿음의 백성이 가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이 염병처럼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 사람이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그 영향력이 주변을 놀랍게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영적 부흥을 이끄셨던 ‘최권능 목사님’은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라. 예수에 미치지 않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26장 24절’을 보면 바울을 심문하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이 죽음 앞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바울아! 네가 미쳤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에게 이 말은 조롱의 말이 아니라, 영광의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마가복음 3장 21절’을 보면,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말씀을 들었고, 또 ‘마태복음 10장 25절, 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미쳤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반드시 “네가 예수한테 미쳤구나!”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믿음의 성도에게는 오히려 영광의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에게 이 ‘염병에 걸렸다, 예수한테 미쳤다’는 말은 오히려 이제 세상이 자신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한다’는 말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예수인 교회’에 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누구신지 아십니까?

돈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공부 많이 하고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젊고 힘세고 건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똑바로 미친, 염병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은, 주님의 사랑에 미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심장이 뜨겁게 반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눈물과 감격이 불타는 염병과 같은 미친 사람이 하나님은 찾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울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고, 감격도, 열정도 없는 한 겨울에 처마 밑에 얼어있는 고드름 같은 믿음 가지고는 어떠한 사명도 성령의 능력과 기적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더라고 하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더라고 하면 독생자를 날 위해 보내 주실 수 있었더라는 얘기입니까?

우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그 사랑 없이, 그 미친 사랑 없이 지금 우리가 존재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으신 주님의 사랑은 오래전에 잊어버리고, 지금 내 삶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겠습니까?

내 삶의 불편함과 불이익, 때로는 부끄러움과 창피함 때문에 복음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영성학자 ‘심클레이 퍼거슨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죽이는 질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무감각이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감각이다.

신앙의 열정도 감격도 잃어버리고 습관적인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 때문에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오늘 본문이 속한 ‘24장 25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말을 들은 ‘벨릭스’ 총독은 오히려 죄수인 바울을 ‘두려워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에 미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을 담대히 전하는 염병과 같은 사도바울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염병과 같이 복음에 미친 믿음의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시던 일을 지속하기 위함이다.”

 

기도 제목: 내 믿음과 삶에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다시 회복되어 복음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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