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81. 행 23: 1~11. 용기를 냅시다.
2022.11.29 07:49
예수인교회
행 23: 1~11. 용기를 냅시다. 찬 419장(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사도바울’의 삶의 모습은 한마디로 ‘오직 예수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모진 핍박을 받고 매를 맞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그 모든 시련 앞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의회원들을 주목하고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여기서 “바른 양심”이란 단어는 종교적 용어로 이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살았다’라는 뜻은 “시민이 되다, 통치를 받다, 생활하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 전부가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권아래 통치를 받고, 하늘나라 천국 백성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도바울’이 고난 가운데서도, 환란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한마디로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그 삶이 신실한 자, 바른 양심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의 담대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 3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들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을 듣고,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바울이 그에게 말하였다.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당신이 율법대로 나를 재판한다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서, 나를 치라고 명령하시오?””
이처럼 환경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담대하고 당당히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그 통치와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 5절의 말씀입니다.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모욕하오?” 바울이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소. 성경에 기록하기를 ‘너의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라’ 하였소.””
이 장면은 ‘사도바울’이 너무도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그 중의 한 사람을 꾸짖으니까,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은 대제사장 아나니아’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사도바울’은 순식간에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비록 그 대제사장이 불법을 자행하고 잘못을 하고 있지만, 그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도바울’이 갑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그 권위 앞에 순종한 이유는, ‘사도바울’이 사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그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앞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세우신 직분에 믿음의 순종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그 권위 앞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 결과와 잘못의 대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부터 9절의 말씀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6절부터 9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의 한 부분은 사두개파 사람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파 사람인 것을 알고서, 의회에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바리새파 사람의 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니,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회중이 나뉘었다.
사두개파 사람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그것을 다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바울 편을 들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사도바울’이 개입하지 않아도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악인들 스스로 싸우고 무너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7절’ 말씀에,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하셨고, 또 ‘21절’에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천국백성인 우리가 악인들로 인해 그들과 같이 악한 말과 행동을 하며, 똑같이 악하게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천국백성으로서 축복된 말과 사랑과 은혜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길 원하시지, 악한 말과 행동으로 여러분의 입뿐만 아니라, 마음과 육체까지 악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10절과 11절 말씀입니다.
“싸움이 커지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길까 염려하여, 군인더러 내려가서 바울을 그들 가운데서 빼내어, 병영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본문에서 참 은혜로운 것은 11절 말씀에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고통의 순간, 위기의 순간, 주님께서는 그 곁에 서서 함께 하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곁에 서서 있다’라는 헬라어의 뜻을 보면, “곁에 서있다”라는 뜻과 함께 “준비되어 있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위기가 닥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도 하지만, 또 그 모든 문제와 역경을 이겨낼 방법과 길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위기와 고난의 상황에 있던 ‘사도바울’에게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시는데,
첫 번째는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부분을 ‘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은 ‘확신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축복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성도는 사명,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 문제가 닥치고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하나님의 백성은 사명을 붙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 때문에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사명을 붙들며 상황과 환경을 이겨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믿음의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삶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