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79. 행 22: 1-21,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산다는 것은...

2022.11.17 07:3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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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2: 1-21,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산다는 것은… 찬 436(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겪게 되는 결박과 고난을 다루고 있는 내용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가며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입니다.

1절부터 3절 말씀입니다.

“동포 여러분,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드리는 해명을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군중들은 바울이 히브리 말로 연설하는 것을 듣고, 더욱더 조용해졌다. 바울은 말을 이었다. “나는 유대 사람입니다.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나서, 이 도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을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여러분 모두가 그러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성난 유대인들에게 잠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도바울’은 먼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신분과 학식을 말하는 이유는 자신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도 신분이 높고 학식이 많은 바울 자신이 믿을 만큼 이 복음이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으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자랑하는데 온전히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본문 4절, 5절입니다.

“나는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죽이기까지 하였고,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묶어서 감옥에 넣었습니다. 내 말이 사실임을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가 증언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동포들에게 보내는 공문을 받아서, 다마스쿠스로 길을 떠났습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신도들까지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처벌을 받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도 과거에는 ‘당신들보다 더 심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데 이런 자신이 어떻게 주님을 만났고, 또 참된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본문 6절부터 8절 말씀입니다.

“가다가, 정오 때쯤에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나는 땅바닥에 엎어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나에게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이다’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곳에서 빛을 만나게 되었고,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 과거에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죄악가운데 있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 성도의 삶은 이처럼 변해야 합니다.

영성학자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그 중간은 결코 없다.”

바로 ‘신앙에는 중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여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 중심, 복음 중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절, 10절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으나,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더니,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는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누가 말해 줄 것이다.’”

이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그 인생이 변하게 되고, 주님의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가 ‘사도바울’에게 나타난 주님의 말씀가운데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은 변화된 ‘사도바울’에게 주님께서 다시 “다마스쿠스(다메섹)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도바울’의 ‘삶의 목적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전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에도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 다 ‘다마스쿠스로 가라’는 것입니다.

장소도, 상황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적’입니다.

‘삶의 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 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은 사람이나 다 똑같이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삽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체험한 성도의 삶은 그 삶의 모습과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이전에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니던 힘든 직장과 일터 그리고 가정이었다면, 이제 주님을 만난 후에는 그 모든 곳이 주님을 만난 기쁨을 전하는 감격의 장소, 복음을 전하는 감사와 은혜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곳에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나는 그 빛의 광채 때문에 눈이 멀어서, 함께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사도바울’은 빛을 본 후에 그 빛의 광채로 인해 순식간에 시력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눈을 감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의 것을 잃어버린 순간,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만날 때,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세상의 눈을 가리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 18절 말씀입니다.

“그 뒤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황홀경에 빠져,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새롭게 변화된 ‘사도바울’은 ‘다마스쿠스’를 거쳐 어렵게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의 생각과 달리 “예루살렘을 빨리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9절부터 21절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잡아 가두고 때리고 하던 사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증언자인 스데반이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할 때에, 나도 곁에 서서, 그 일에 찬동하면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의 구원만을 바라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더 큰 이방의 구원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사도바울’의 생각을 뛰어 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이 세상의 것만을 보고 살아갈 때나 너무나 많습니다.

내 생각, 내 기준으로 하나님의 능력도 한계를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은 내 생각과 기준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본문 21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강력히 원하시는 것은 바로 ‘복음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멀리 이방인’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계신데 여기서 ‘멀리’라는 뜻은 ‘끝까지’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장 큰 바램은 바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학자 ‘피더 와그너’ 박사는 “전도하지 않는 성도, 전도하지 않는 교회, 그곳에는 하나님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사명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복음 전도는 당연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기도 제목: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말씀과 복음 중심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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