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78. 행 21: 15-26. 고난을 뛰어 넘는 신앙을 갖자!
2022.11.14 22:28
예수인교회
행 21: 15-26. 고난을 뛰어 넘는 신앙을 갖자! 찬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사도행전 20장’까지의 내용을 통해 ‘3차 전도 여행’을 마친 ‘사도바울’과 그 일행은,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5절부터 16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거기서 며칠을 지낸 뒤에, 우리는 행장을 꾸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가이사랴에 있는 제자 몇 사람도 우리와 함께 갔다. 그들은 우리가 묵어야 할 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여, 나손이라는 사람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는 키프로스 사람으로 오래 전에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그를 기다리며, 아주 기쁘게 ‘사도바울’을 맞이했습니다.
17절부터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이튿날 바울은 우리와 함께 야고보를 찾아갔는데, 장로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인사한 뒤에, 자기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사도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고, 이곳에서 ‘사도바울’은 ‘3차 전도 여행’중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비록 ‘사도바울’의 간증을 통해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은 돌렸지만, 성령충만한 ‘사도바울’과 달리 많은 근심과 걱정에 싸여 있었습니다.
본문 20절부터 22절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에게 말하였다. “형제여, 당신이 보는 대로, 유대 사람 가운데는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을 소문으로 듣기로는, 당신이 이방 사람 가운데서 사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할례도 주지 말고 유대 사람의 풍속도 지키지 말라고 하면서, 모세를 배척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은 틀림없이 당신이 왔다는 소식을 들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이 겪었던 일들을 듣고 아주 큰 도전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은 돌렸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 깊은 걱정에 가득 차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오순절 기간에, 수 만 명이 넘는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은 비록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성령체험을 하지 못해, 율법에 메여 있는 사람들로, 이방 전도에 있어서 율법을 가르치지 않은 ‘사도바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중에 ‘사도바울’과 논쟁과 싸움을 하면서 대립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장로들은 이제 그들이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과 처음 오순절 날 성령이 역사하셨던 그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초기에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었고, 스데반이 순교를 하며, 성도들이 모진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때도 오늘 본문의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때에는 성도들 가운데 성령이 충만했지만, 지금의 예루살렘 교회는 외형적으로 크게 부흥하고 성도는 많아졌지만 그 안에는 성령의 은혜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환경 앞에 낙심하고 좌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진짜 문제는 환경이나 고난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 큰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질 것 같은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파도 위를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너무 놀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본 순간에 ‘베드로’는 자기의 세상적인 상식을 모두 다 버렸던 것입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당연한 세상적 상식과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정신없이 물 위에 뛰어 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도의 삶은 땅 위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기적이 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나를 낙심케 하고 실망케 하는 주변의 모든 형편과 상황 속에서 나의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 성령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나가야 합니다.
23절부터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맹세한 사람이 넷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게 하고, 그 비용을 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소문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도리어 당신이 율법을 지키며 바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신도가 된 이방 사람들에게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결정해서 써 보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도바울’에게 한 가지 대안을 제시를 합니다. 자신들이 짠 계획대로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인 세상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 피해 보고자 하는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전략이었습니다.
본문 26절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다음날 그 네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한 뒤에,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결 기한이 차는 날짜와 각 사람을 위해서 예물을 바칠 날짜를 신고하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뒤의 본문에서 나오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를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의 인간적인 방법과 전략, 그리고 그에 할 수 없이 응했던 ‘사도바울’ 모두가 실패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세상과 타협을 하면 편할 수 있습니다.
타협만 하면 쉽게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세상과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성령충만과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 나가야 합니다.
기도 제목: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성령충만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분별하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목장 내의 사탄이 주는 영적 시험과 방해가 있다면 믿음으로 이겨 승리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