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77 행21:1-14  선교적 삶 

2022.11.11 08:2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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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77 행21:1-14  선교적 삶   찬 191/427 내가 매일 기쁘게

  선교란 뭘까요? 단순히 전도를 해외에서 하는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맞지만, 선교란 라틴어로 “mitto” “보냄받다”란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느 성도가 주일예배에서 “사랑하고 인내하라”는 말씀을 받고 직장에서 말씀대로 사는걸 “선교”라고 하며 이사람을 “선교사”라고 부를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때 선교사란 특별한 사람이기 보다 “주님의 뜻을 세상속에 행하는 사람”인것입니다. 바울은 그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그의 모습속에서 선교적 사람의 3가지 패턴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선교적 삶은 “하나님의 시간에 반응합니다.”

  선교지에는 선교지의 시간이 흐릅니다. 행 21:1-2 우리는 그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곧장 항해해서 고스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로도에 들렀다가 거기에서 바다로 갔다. 우리는 페니키아로 가는 배를 만나서 그것을 타고 떠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명보다 바울의 움직임입니다. 그는 이튿날 작별후, 곧장 배를 갈아타고 바쁘게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그이유는 예루살렘교회가 지금 심한 기근과 가뭄으로 고생하기에 이방교회에서 후원금을 걷어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방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정도로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는걸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미션을 갖고 가기에 마음이 급한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로에서 배가 일주일이나 정박합니다.(3절) 두로는 예루살렘 근처의 해안가로 미국으로 말하면 하와이같은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일주일이 즐거운시간이었겠지만 바울에게 일주일은 매우 초조하고 답답한 기다림이었을것입니다. 선교적 삶에는 이런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차질이 발생할때가 많습니다. 가령 질병이나 지체들과 부딪힘, 날씨나 재정, 추방등의 문제로 모든걸 멈춰야 할때가 있습니다. 이때 생각할것은 선교지는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으로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그 시간에 보폭을 맞춰야 합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은 이것을 몽골초원의 강물로 표현했습니다. 초원에는 강물이 많은데 희한하게도 물이 직선으로 흐르는것이 아니라 굽이 굽이 돌며 흐르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까 물이 굽이돌며 이곳저곳을 흐르다 보니까 초원지대가 더 넓어지고 많은 동물이 더 서식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돌아갈수록 축복의 지역이 더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적 삶이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요셉, 다니엘,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직선의 삶이 아니라 돌아가는 삶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어떤 분은 좀 빠르게, 어떤분은 좀 더디게 갈수있습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이 가정을 더욱 풍성하고 깊어지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꺽이면 꺽이고. 멈추면 멈추고, 달려야 한다면 달려가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선교적 삶입니다.

둘째 선교적 삶은 “사명에 반응합니다.”

   사명이란 쉽게 말해서 “내가 여기에 온 목적입니다.” 바울은 지금 모든 전도여행을 마쳤기에 어떻게 보면 “두로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쉼을 주는가?”하여 일주일간 휴가처럼 쉼을 누릴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합니까? 행 21:4  우리는 두로에서 제자들을 찿아서 만나고 거기서 이레를 머물렀다… 두로에서 제자를 만나서 일주일 모두 보냈다고 말합니다. 행21:7 우리는 두로에서 출항하여 항해를 끝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신도들에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 돌레마이에서도 하루를 성도들과 보냅니다. 행21:8이튿날 우리는 그곳을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일곱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는 곳곳에서 쉴틈없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바울은 뼈속까지 사명자다.” 코카콜라 사장은 “내 혈관속에는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른다 내몸의 어디를 찔러도 코카콜라가 나온다” 그정도로 그의 인생은 코카콜라가 전부라는걸 말합니다. 바울도 “내 혈관에는 예수의 피가 흐른다 나는 어디를 찔러도 예수가 나온다”고 했을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눈만뜨면 복음에 미쳐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도는 일부러 식당을 바꿔가며 점심을 먹는다고 합니다. 왜냐면 새로운 곳에 종업원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성도는 마켓을 갈때마다 일부러 한 케시어에게만 계산합니다. 그분을 전도하기 위함이랍니다. 삶이 영혼구원인것입니다. 또 하나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것입니다” “곡성”이란 영화의 한대사입니다. 뭣이 중헌디” 가끔 선교에 주객이 전도될때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선교지에 재정이나 필요한 물품과 건물을 지어주거나, 각종 봉사활동만 하고 올때가 있습니다. 모두 선교지에 필요한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것은 세상단체들도 다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우리만 할수있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과 영적터치”입니다. 몇년전에 멕시코선교에서 지역주민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예배드릴때 우연히 한여성의 어깨를 잡고 기도해줄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나의 손을 자신의 배로 가져갔습니다. 알고보니 임산부였습니다. 배를 잡고 기도할때 그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임산부와 아기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순간 그녀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고 저는 “아 내가 이분 때문에 이곳에 왔구나” 깨달았습니다. 만약 내가 식사나 다른것에 집중했거나 언어가 달라서 기도해주지 못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생각했습니다. 선교적삶은, 오늘 내가 가는곳에 진짜 “목적”,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때 일어납니다. 

셋째 선교적 삶은 “성령에 반응합니다.”

     선교적 삶은 항상 성령의 역사와 이끄심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있다는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에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바울의 손과 발이 묶여서 이방사람들의 손에 넘겨질것을 성령이 알려줬기 때문입니다.(행21:11) 그래서 두로에 갔을때도 사람들이 간절히 말렸고(행21:4)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바울을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님의 인도가 고난과 고통의 길일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저는 처음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을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어머니였습니다. 믿음이 좋았던 어머니가 반대하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길을 걷다보니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성령의 뜻이 분명해도 그길에 고난과 역경이 뚜렷이 보인다면 우리는 주저하게 될것입니다. 한 천주교 성당에서 스님을 모셔놓고 “스님에게 길을 묻다”라는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마침 그때 한 개신교 사모님이 목회의 어려움을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의 말이 “당신은 제대로 잘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잘가고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학시험을 준비할때 그만큼의 수고와 어려움이 있다고 대학을 포기할까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직장을 안들어갈까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갖는것도 힘드니 결혼하지 않을건가요? 그렇지 않습니. 고난과 역경이 가치를 위해 도전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가 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왜 위험하다고 알려주는걸까요? 그것은 위험하니까 피하라는것이 아니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일기예보에서 이번주 비가 오거나 날씨가 덥다고 알려주면 준비해서 나가면 됩니다. 지금 가는 길에 고난과 역경이 있고 아무도 안알아주는 답답함이 있다면 잘 가고 있는것입니다. 오늘도 그 미션의 삶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우리가 서있는곳에서 선교적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사/모든예배/감사절)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모든 주일/새벽/목장, 그리고 감사절 예배를 통해 진정한 감사를 올려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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