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68 행18:1-11 인생의 고린도를 만날때
2022.10.28 12:15
예수인교회
거인들의 발자국 68 인생의 고린도를 만날때 행18:1-11 찬361/통480 기도하는 이시간
2020 7월 9일 한국의 차기 당대표와 대통령 대선주자면서 현 서울시장이었던 박원순씨는 갑자기 자살하게 됩니다. 이유인즉 그의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최고에서 최악으로 추락한 충격이 그를 자살로 이끌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감당할수없는 실패와 장벽을 만날때 모든걸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에 휩쌓이게 됩니다. 오늘 고린도에 들어온 바울이 그랬습니다.(3절) 왜냐면 이전에 아덴에서의 큰 실패와 고린도가 갖고 있는 영적 암담함이 그를 엄습한것입니다. 거기다가 디모데와 실라도 없고 돈과 먹을것도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이럴때 바울은 3가지를 잡았습니다.
첫째 인생에 고린도에서 “부족함을 잡았습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마주한 것은 총체적 부족함이었습니다. 동역자의 부족, 재정의 부족, 능력의 부족, 건강의 부족, 지혜의 부족등등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인생에 적신호가 들어온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늘 부족할때 옵니다. 행18:2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루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본도는 바울이 태어난 인근지역으로, 고향사람을 만난것입니다. 만나고 보니 아굴라도 자신과 비슷하게 추방당해서 천막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함께 일할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바울도 천막일을 잘하는터라 천생연분이었던 것입니다.(3절) 더 중요한것은 이들은 후에 목숨까지 바칠수있는 동역자들이 됩니다.(롬16:3) 부족함이 연결해준 은혜였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 불멸의 이순신등으로 유명해진 “김명민”이란 배우를 아실겁니다. 그가 2010년 “내사랑 내곁에”라는 영화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탈때 소감입니다. “제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배우라는 재능을 주셨는데 뭔가 부족하게 주셔서 남보다 두세배 노력을 더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겸손과 항상 미덕이라는 노력을 가지고 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감사였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부족함 때문에 망하는것이 아닙니다. 부족함 이후에 찿아오는 “원망과 두려움”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광야는 부족함 투성이였습니다. 물도 옷도 집도 모든것이 부족함의 그곳에서 이스라엘 1세대가 다 죽었는데, 성경은 그들이 부족해서 죽은게 아니라 “원망과 불평”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광야는 오히려 만나와 매추라기로 늘 채움을 받는 “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이지선씨가 처음 사고를 당하고 수술을 잘 마쳐서 살게 되었을때 자신의 외모의 부족함을 보면서 오히려 원망과 불평으로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감사일기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글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얻는걸 보며, “사람이 부족함 때문에 죽는게 아니라 원망과 불평으로 죽는구나”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피하지 마시고 부족함을 붙잡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것입니다.
둘째 인생의 고린도에서 “좋은 소식을 잡았습니다”
인생에 고린도를 만날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주십니다.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는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밝혀 증언하였다. 바울은 이전까지 부족함 때문에 주중에는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만 말씀을 나누다가 드디어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본업인 말씀만 전하게 됩니다. 이장면속에 두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업과 부업을 헷갈리지 말라”는것입니다. 이것을 헷갈리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기위해 하나님께 매달리고, 사업이 잘되게 하려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이럴경우 사업이 안풀리거나 기도해도 안되면 오히려 예수는 없다고 말하며 시험에 듭니다. 바울은 이것이 분명했습니다. 또하나는 “좋은 소식을 잡으라”는것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일손이 채워졌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수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와 전했던 좋은 소식때문이었습니다. 살전1:6-7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등에서 말씀이 잘 증거되지 않아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좋은 소문이 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들으니까 더욱 힘이나고 자신감이 생긴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좋은 소식을 붙잡아야 삽니다. 나쁜소식을 잡으면 죽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했을때 12정탐꾼들은 좋은소식과 나쁜소식을 갖고 왔습니다. 좋은 소식은 “가나안땅은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민13:27) 그러나 나쁜소식은 “그곳에 아낙자손이 있었고 모든 성읍들은 강해보였습니다.”(민13:28) 근데 그중에 10명이 나쁜소식을 잡았을때 어떻게 되었나요?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영적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한 친구목사가 한국에서 개척하여 사역하는데 하루는 갑자기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1명의 속썩이는 성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충분히 됬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1명은 나쁜소식이었지만 남은 9명은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럼 9명을 붙잡고 일어서면 되는데 1명을 붙들고 죽는다는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오늘도 여러 소식이 들려질때 좋은 소식 나를 살리는 소식 나에게 힘이되고 일으키는 주님의 굿뉴스 복음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셋째 인생의 고린도에서 “사명을 잡았습니다”
바울은 힘을 내어 복음을 전파하지만 고린도의 암담함은 쉽지 않았습니다. 행 18:6절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반대하고 비방하므로 바울은 그의 옷에서 먼지를 떨고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 바울이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다시 해볼려고 할때, 또 유대인들의 저항이 거세진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그만 화를 내며 그 회당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곳이 고린도의 유일한 회당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회당을 나와서 길거리 전도중에 디디오라는 유스도를 우연히 만나 그집에 갔는데 하필 그 회당 옆인것입니다. 거기다 그리스보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그 회당의 회당장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날밤 마케도냐의 두번째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행18:9-10 그런데 어느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 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이 모든 메세지는 고린도에서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으니 여기 머물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이정도까지 붙잡을 정도라면 바울이 지금 정말 많이 지치고 상처입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고린도는 바울의 2차전도여행의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달릴만큼 달렸고, 참을만큼 참아온것입니다. 그럼에도 뚜껑이 열려서 도망치고 싶을때 바울을 멈춰세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결국 바울은 자존심이 상해서 유대인들에게 다시는 내가 여기오나 봐라 했는데, 사명을 회복하니까 다시 그회당에서 1년 6개월을 지냅니다.(행18:11) 이것이 “사명의 능력”입니다. 미주 어느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이 필리핀으로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한 아이는 물을 먹기 힘들고 화장실 사용이 힘들고 벌레에 물려 그기간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다음에 또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한 아이는 그지역에 예수님을 믿으려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서 울면서 다시 그곳을 오고 싶다고 합니다. 똑같이 훈련받고 똑같은 악조건에서 똑같은 선교를 다녀왔어도 그곳에 왜 갔는지 사명을 알고 간 사람과 모르고 간 사람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을 알고 직장을 가는 분들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미션의 삶”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모르는 분의 직장은 늘 힘든 일상의 반복일뿐입니다. 오늘도 이말씀을 붙잡길 바랍니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이 직장에는, 이가정에는, 이밸리에는, 아직도 나의 백성이 많다. 이 사명으로 고린도를 향해 정면돌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마주한 인생의 고린도에서 다시 일어설수있도록 주님을 붙들게 하소서.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붙들고 내가 머무는 그곳에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가는 거룩한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들) 담임목회자 및 교역자, 목자,서번트, 사역팀장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가정의 부모들을 위해, 민족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