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60 행16:1-10 복음의 2편을 시작하라
2022.10.13 03:54
예수인교회
거인들의 발자국 60 행16:1-10 복음의 2편을 시작하라, 찬191 / 427 내가 매일 기쁘게
영화나 소설을 보면 1탄이 흥행하면 2탄이 나오는데 2탄에서는 주인공이 더 성장하고 이야기와 스케일이 더 커집니다. 바울의 전도여행도 그랬습니다. 1차전도여행은 안디옥교회 근방과 소아시아주변이었다면 2차는 유럽과 마케도냐까지 확장되고 단순한 복음전파에서 믿음을 성장시키는 여정이었습니다.(5절) 우리의 신앙도 1차에 머물것이 아니라 2차전도 여행이 시작되야 합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2편이 시작되려면 “변수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변수란 계획 이외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할때를 말합니다. 멋모르고 시작했던 1차와 다르게, 2차는 1차때 복음을 전했던 교회들을 돌아보며 믿음을 굳게할 목적으로 철저히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변수가 발생합니다.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어 바나바일행만 남쪽인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정반대인 북쪽의 시리아와 길리기아쪽으로 갑니다. 여행경로가 완전히 바뀐것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갈때 거리와 숙소를 잘 계산하지 않으면 음식과 잠자리가 위태로울수있습니다. 거기다가 6절에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사람이 막은적은 많았지만 성령이 막은적은 없었습니다. 바울은 완벽주의자였기에 틀어진 계획과 당황스런 변수들 때문에 혼란스러웠을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그러나 사실 우리 인생은 변수투성이 인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처음 이민올때 지금의 모습을 계획했나요? 대부분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을 것입니다. 10년 20년전에 꿈꾼 배우자와, 자녀와, 가정에서, 꿈꾼대로 살고 있는 분 계신가요? 인생은 변수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어떤분은 “내인생에 내맘대로 되는게 없어”라며 낙망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때, “내맘대로 되는게 없는 인생”이 복된 인생인걸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21장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니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겠지만 나중에는 남이 띠를 띄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리고 다닐거다” 나에게 집중하면 원치않는 “변수”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철저한“섭리”일때가 많습니다. 창39장에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참 험악한 인생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그의 인생을 보면 속이는자 야곱이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섭리였다는걸 알수있습니다. 비록 바나바와 바울이 위,아래로 갈라졌지만 이로인해 하나님의 선교가 입체적이 되었고 거기다가 오늘 1절을 보면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라는 인생 최고의 영적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최악의 경로에서 최고의 사람을 만난것입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걸 기억하며 오늘도 변수가 아니라 섭리를 바라보며 2차전도여행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2편이 시작되려면 “복음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에 몇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그중하나가 “기쁜소식”이란 의미입니다. 실제 “복음의 길”은 좁고 협착한 전혀 기쁘지 않는 고난의 길입니다. 오늘 1절에 2차전도 여행의 시작이 더베와 루스드라입니다. 지난장에서 봤듯이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치켜세웠다가 마음에 안드니까 돌로 쳐죽여 성밖에 버린곳입니다. 여러분은 이런곳을 다시 갈수있을까요? 한국남자들에게 절대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베스트 1위가 “군대”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는 누구나 제대후 약한달간 군대의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처럼 “갈수없는 곳,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시 하게 만듭니다. 왜일까요? 그곳에 정말 복음을 들어야 할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디모데가 있었습니다.(1절) 그는 동네에서 소문난 칭찬받는 사람인데다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언어나 문화적으로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레를 행합니다. 복음은 율법으로부터 자유케하는데 왜 다시 할례를 행했을까요? 4절에 그이유를 말합니다. 그를 자유인만 아니라 유대 율법주의자들까지 복음이 통할수있게 만든 것입니다. 복음의 사람이란, 자기가 좋은대로, 자기 성격대로,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33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끔 복음을 남용하며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자기의 성격이 강한걸 마치 자랑처럼 말하는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복음의 사람이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목자들을 보며 이런모습을 봅니다. 목원을 위해 간도 쓸개도 빼주려는 목자,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목원에게 전화해서 축복해주는 목자, 꽉막혀서 말이 안통해도 계속 초청하는 목자, 자기 자식도 못챙기는데 목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목자의 모습을 보며 복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음이란 단순히 행복하고 기쁘고 자유스러운게 아니라 행복하지 않는길을 가며 복되게 여기고, 전혀 기쁘지 않는 삶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리며 자유스럽지 않은 억압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럴때 우리 신앙의 2차가 시작됩니다.
셋째 2편이 시작되려면 “성령을 잘이해해야 합니다.”
6-8절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이본문은 처음으로 말씀의 문을 막으시는 성령이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막았는지 알수없지만 누가봐도 성령이 막았다는걸 알정도의 뭔가가 있었다는것입니다. 매우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왜냐면 우린 일반적으로 “열리는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기도할때 “마음이 안열리면 그 일을 하겠습니다.” 또는 “사업의 문이 꽉 막히면 그 사업하겠습니다.” 하는 분 계신가요? 대부분 막히면 아닌걸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8절에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말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막혀서 그길을 더 나갔다는 것입니다. 갔더니 어떤일이 벌어집니까? 10절에 그 유명한 마케도니아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한번의 선택이 유럽대륙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어떻게 그는 성령의 뜻을 분별했을까요? 롬12:1-2에서 바울은 분별의 3단계를 말합니다. 첫째 몸을 드리라, 이것은 몸을 쳐서 복종시키라는것입니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라 마음의 생각이 바뀌는걸 말합니다. 셋째 분별하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순서를 반대로 합니다. 먼저 분별하고 마음을 바뀌면 몸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반대입니다. 몸을 드리는 순종을 할때 마음이 새로워지고 비로소 무엇이 옳았는지 보이게 됩니다. 선교가 그대표적입니다. 선교를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순종해서 가보면 마음이 바뀝니다. 그리고 왜 내가 여기에 왔는지 깨닫고 비로소 분별력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 수많은 역경속에서도 흔들림없이 그길을 계속갈수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 몸으로 터득한것입니다. 여러분 분별은 열매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순종으로 동행하면서 몸으로 배워가는 성령의 가르침입니다. 이걸알때 오늘도 우리 인생에 복음의 속편이 시작됩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복음으로 충만케 하소서 이런저런 변수속에서 주님의 인도를 믿고 최선을 다하여 흔들림없이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보이는것보다 보이지 않는걸 보며 믿음으로 나가게 하소서
중보제목:(목:지도자들을 위해)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 목자, 서번트, 사역팀장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와 교육기관과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