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50. 행12:20-25. 내 삶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2022.09.26 21:2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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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2:20-25. 내 삶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찬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잠언 24장 1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시편 37편 1절 2절’에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악한 자와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지금은 흥하고 성하는 것 같으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축복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막강한 권력으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를 죽이고, 이제는 ‘베드로’마저 죽이기로 했던 ‘헤롯’이 크게 왕성할 것 같았으나, 결국은 그 삶이 비참한 실패와 패망의 삶을 산 것처럼, 이 모습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으며, 그 주권자가 누구이신가를 바로 깨달게 해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을 보면,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몹시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뜻을 모아서, 왕을 찾아갔다. 그들은 왕의 침실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그를 통해서 헤롯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그들의 지방이 왕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그 이유가 분명히 나오지 않고 있지만, ‘헤롯’이 통치하던 유대로부터 식량을 공급받던 두로와 시돈 지역의 백성들이 어떤 일로 인해 ‘헤롯’을 크게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황의 다급함을 인식한 두로와 시돈 주민들은 왕의 신변의 경비를 맡고 있는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왕과 화해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21절, 22절을 보면 “지정된 날에, 헤롯이 용포를 걸쳐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그들에게 연설하였다. 그 때에 군중이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하고 외쳤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본문은 ‘헤롯’이 이들의 간절한 화해의 마음을 수용하여 특별한 한 날을 정하게 되는데, ‘헤롯’은 그날 그는 자신의 권위와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 제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왕복을 입고 보좌에 앉아 두로와 시돈 백성들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자 두로와 시돈 백성들은 왕의 분노를 풀기 위해 아첨의 말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왕이 연설은 하나님의 연설이요, 사람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본문 2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즉시로 주님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다.”

‘헤롯’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이 모든 영광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몸에 충이 먹어 죽게 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죽기 전 5일 동안 극심한 복통으로 끔찍하게 고생을 하다 비참하게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잠깐 왔다가 사라질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치 영원할 것같이 생각하며, 자신의 권세와 명예만을 위해 살았던 ‘헤롯’의 교만과 욕심이,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던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흩으시고 흔드시니까 마치 아침 안개와 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헤롯’을 심판한 “주님의 천사”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는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출했던 “주님의 천사”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헤롯’을 그 부귀영화 가운데서 끌어내어 죽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베드로’를 죽음에서 건지신 분도, ‘헤롯’을 죽이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의 인생의 주권이 바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을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핍박이 극심해 지고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마저 죽음의 직면하는 그 위기의 순간,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결국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헤롯’은 죽임을 당하고 오히려 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상황과 환경으로는 망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 인생이, 그 삶이 오히려 축복의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그 그리스도의 생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의 삶을 바꾸시고, 역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환경이나 형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삶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축복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그들의 사명을 마치고,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런 교회의 모진 박해와 핍박 가운데서도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기근으로 힘들어 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과 물질을 가지고 돌아 올 정도로 자신들이 맡았던 사명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잘 마치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모진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부흥을 이루고, 또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들은 그 귀한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성도는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력이나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성령충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교회의 수가 많아졌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삶의 축복을 받는 비결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나의 삶이 내 인생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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