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9. 행 10:9-23. 하나님께 쓰임 받길 원하십니까?

2022.09.07 19:1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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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0:9-23. 하나님께 쓰임 받길 원하십니까? 찬 325(예수가 함께 계시니)

신학자들은 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 사도행전에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고 보는데, 첫 번째는 ‘사도행전 2장’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사건을 말하고, 두 번째는 ‘사도행전 9장’에서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회심한 개인적인 성령체험 사건이고, 세 번째는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어 성령충만을 받게 하시고 그 가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방 선교가 시작되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은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누구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찾으시고, 쓰고자 하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고넬료’가 기도 중의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것 같이,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 역시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10절에 ‘황홀경’이란 뜻은 ‘정신이 몽롱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에는 ‘다른 것과 단절되다, 벗어나다, 집중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그것에 집중했다”는 것으로, ‘베드로’가 ‘기도 중에 황홀경에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집중해서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환상과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능력의 사람’이기 이전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는 매일같이 제 구시에, 즉 오후 3시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어느 날,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자를 만나서 그를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제 육시, 오후 정오에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매일 같은 시간에, 시간을 정하고 하루 3번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능력 있고, 돈이 많고, 열심히 헌신한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고, 환란이 닥칠 때, 믿음의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시간에는 사람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따라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아직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예수가 태어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때가 차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시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 때에 주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넬료’의 종들이 성에 가까이 갔을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절묘하게 ‘베드로’의 기도 시간을 이용해 그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게 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그것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하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서 사용한 ‘기도’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이 의미는 ‘엎어지다, 구하다’라는 뜻으로 ‘베드로’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찾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편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요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나는 선택받은 민족이고, 이방인은 천한 민족이다’라는 유대인들의 편견을 ‘베드로’ 역시 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그 편견을 없애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해 오늘 본문의 환상을 그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편견과 오해 그리고 무관심이 하나님의 일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신앙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충만함 가운데 능력의 삶을 산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편견, 나의 고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 편견을 없애고,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뤄지는 것이고, 한 사람이 아닌 교회가 바로 세워지고 부흥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이셨던 은그릇에 담김 짐승들의 의미는 다양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고, 피부 색깔도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두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또 이해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면, 십자가 밑에서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십자가 아래에서 그 사람도, 나도 죄인이고,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지만 또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은혜 아래, 주님은 나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서로 간의 편견을 버리고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축복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십자가 아래에서 미움과 편견을 버리는 하나님의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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