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7. 행 9:36-43.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삶.

2022.09.05 20:58

예수인교회

조회 수438

행 9:36-43.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삶. 찬 286(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오늘 본문은 ‘욥바’라는 곳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살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죽게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녀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베드로’에게 간청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왜 사람들은 이토록 ‘다비다’라는 여인이 다시 살기를 간절히 원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욥바’에 있는 초대 교회에도 많은 성도들이 운명을 다하고, 수명이 다해 죽었을 텐데, 유독 사람들이 ‘다비다’만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녀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39절을 보면 ‘베드로’가 ‘다비다’의 시체가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울다’라는 단어의 뜻은 ‘슬픔의 울음’이 아니라 ‘안타까움에 의한 간절한 울음’이란 뜻입니다.

바로 그들은 단순히 ‘다비다’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매우 중요한 사람인 ‘다비다’가 갑자기 죽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타까운 심정으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6, 37절을 보면,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에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무렵’라는 뜻은 ‘다비다’가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고 있던 그 시점에 그녀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다비다 사건’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기적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비다’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일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 또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도움을 주며 섬기는 삶, 즉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과 교회에 복된 일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고,

‘디모데전서 6장 18절, 19절’에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성도의 구제와 나눔과 섬김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그것이 또한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6절을 보면, ‘다비다’를 향해 ‘여제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오늘 본문에만 나옵니다.

성경에 수많은 여성들이 나오지만 오직 선행과 구제에 앞장섰던 ‘다비다’만을 ‘여제자’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제자’라는 뜻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성’, ‘그리스도를 배우는 여성, 모방하는 여성’이란 뜻으로 ‘다비다’는 예수님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교훈과 명령대로 실천하며 살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이고, ‘도르가’는 헬라어로 ‘사슴’이란 뜻인데, 여기서 ‘아름답다’는 뜻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행실이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슴’이란 ‘성품이 온화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던, 주님의 사랑의 가르침을 몸으로 직접 실천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본문 어디에도 그녀의 남편이나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녀는 자식도 없이 혼자 살던 과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녀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사람, 심지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면서, 오직 주님의 제자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인 선행과 구제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9절을 보면, ‘다비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던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보여 준 것은, 바로 ‘다비다’가 생전에 직접 손으로 지어 준 속옷과 겉옷으로, 이것은 그녀의 사랑과 헌신이 담겨진 선물이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다비다’로부터 사랑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많은 것을 가진 가운데 나누어 준 사람이 아니라, 비록 자신도 부족하고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의 정성과 사랑을 다해 옷을 만들어 주며, 그들을 진심으로 섬기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6절의 ‘착한 일’이란 뜻은 단지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이란 뜻입니다.

바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착한 일’은 주님의 사랑과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해야 하며, 또 그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음 전파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2절의 “그 일이 온 욥바에 알려지니,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선행과 구제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난 기적들을 보면서 믿지 않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오늘 내 삶 속에서 나의 섬김과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전할 수 있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