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6  행9:31-35 일어나는 자

2022.09.02 08:1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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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36  행9:31-35 “일어나는 자 RISE UP   찬180  하나님의 나팔소리

베드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과 다투고, 예수를 부인하고, 환자들을 밀어내는등,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 영적 회복을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40년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오늘 룻다에 중풍병에 걸린 애니아를 일으키고, 욥바에 죽은 과부를 일으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첫째 일어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행9:31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이것은 교회가 단순히 안정됬기에 수가 많아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에 “성령의 위로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위로란 성령의 인도를 말합니다. 즉 안정된 삶속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안정된 삶을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자극도 변화도 성장도 없습니다. 이런 삶에 주저앉으려 할때 성령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끕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행9:32 베드로는 사방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내려가서, 거기에 사는 성도들도 방문하였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났을때도 움직이지 않던 사람입니다(행8:1) 그런데 전도하지 않아도 될때 성령의 이끌림으로 일어났다는 걸 말합니다. 더중요한점은 그의 행로입니다. 그는 처음 룻다에 중풍병자를 만나고, 이후 욥바에서 죽은과부 다비다를 만납니다. 이후에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집을 방문합니다. 이 모든것은 베드로가 원치 않은곳이었습니다. 왜냐면

환자를 만나고 죽은 시체나 이방인을 접촉하는것은 율법에서 절대로 금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우린 모두 성령의 인도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실제 성령의 인도는 우리가 원하는 삶과 정반대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전도할때 “교회나오면 행복합니다.” 라고 소개 하지만 실제로 교회를 나오면 원치않는 사람을 만나거나, 힘든일을 맡게되거나, 휴일에 놀러도 못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나가기 싫어요.” 말하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습니다.(행1:8) 지금 성령은 베드로를 단순히 그가 하기싫은 일로 이끄는게 아니라 빌립집사를 이끌었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를 아버지가 원하는 교회로 이끌기 위해 베드로를 원치않는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를 정말로 구한다면 내가 원치않는 곳으로 인도하더라도 순종할수있길 축복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영혼은 새로운 자극으로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둘째 일어나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행9:33 거기서 그는 팔 년 동안이나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다 어느 학자는 원어적 의미로 볼때 이 애니아가 중풍병이라기 보다는 근육무력증으로 무기력과 권태감과 우울증에 시달려 8년간 인생을 무력하게 산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즉 인생이 마치 무언가에 묶여서 아무것도 할수없는 인생을 산것입니다. “애니아”란 원래 “칭찬받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비참한 사람이 된것입니다. 그에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행9:34 베드로가 그에게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시오” 하고 말하니, 그는 곧 일어났다. 중요한 장면입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예수님이 너를 낫게 하신다. 일어나라” 이것은 두가지 의미로 볼수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라”는것입니다 이시간에도 예수의 말씀으로 듣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사람의 말로 받으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고 주님의 음성으로 받으면 주님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낫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나이에, 상처에, 질병에, 자녀에, 신분에, 두려움과 미움으로 부터 자유케 되길 원한다. 너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나의 찬송을 부르는 자다 나는 네가 낫길 원한다.” 오늘 이 말씀을 듣거나 읽을때 마음이 울컥하고 일어나는 분들이 있다면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주님의 음성으로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잡을때 일어납니다. 예수안에는 우리를 일으키는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이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것은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이 너를 언젠가 도와주실것이 아니라 이것을 믿음으로 붙잡는 순간 이미 마음의 치유와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그리고 이음성에 이끌려서 자녀들과 배우자, 그리고 주변에 묶여있는 자들에게 선포해주는 일으키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일어나려면 “자리를 정돈해야 합니다.” 

   행9:34 베드로가 그에게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시오” 하고 말하니, 그는 곧 일어났다 베드로가 그의 자리를 정돈시키자 그때서야 그가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것은 “나의 삶의 습관, 인생”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예수님도 베데스다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칠때 요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말씀하셨습니다. 38년이나 누워 있었다면, 그 주변은 얼마나 더럽고 추하겠습니까? 자리를 옮기는것은 삶과 인생의 습관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왜죠 요5:14 “그 후에 …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베드로는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벧후 2:22 개가 그 토하였던 곳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다”. 초대교회에도 성령충만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은 다음에도 술친구를 계속 사귑니다. 도박하는 친구들과 계속 사귑니다, 험담하는 자리, 두려움과 걱정의 자리, 쾌락의 자리, 사치와 방탕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결혼 전에 다른 사람과 사귀었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 있죠 근데 결혼 한후에도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힘들고 불행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만나면서도 삶의 자리를 정돈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것입니다. 눅11장에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강조했습니다. 눅11:24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하면, 그 귀신은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맨다. 그러나 그 귀신은 찾지 못하고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한다 그래서 이집이 어떻게 되죠? 26절에 … 그 사람의 나중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를 드린후에는 반드시 말씀을 듣고 자리를 정돈하고 삶을 잘라내는 결단과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그저 말씀만 듣고 일어서지 마시고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확신하고 삶을 결단하여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아멘으로 듣게 하시고, 믿음으로 일어서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음성이 필요한 영혼을 보게하시고 나와 그들의 자리를 정돈하는 결단과 헌신이 있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 모든 예배와 훈련) 13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모든 주일예배, 새벽예배,목장예배, 그리고 9/18일 VIP초청예배, 예삶아카데믹을 위해서 중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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