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5. 행 9:20-30. 하나님의 나라는 함께 세워 나가야 합니다.

2022.08.31 21:24

예수인교회

조회 수464

행 9:20-30. 하나님의 나라는 함께 세워 나가야 합니다. 찬 182(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기독교 역사 가운데 예수님 이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부터 9장’까지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처럼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은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자기의 의에 갇혀 잘못된 신념으로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죄악인지도 모르고 실패한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처럼 위대한 사도가 되기까지는 또 중요한 만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나바’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사도 바울’을 사랑으로 돕고 협력하지 않았다면, ‘사울’은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도가 아닌 무명의 전도자로서 변방에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놀랐다’는 뜻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사울의 변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22절에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였다”고 말씀할 때, ‘당황하다’라는 뜻은 ‘혼란케 하다, 당혹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이제 사울의 변화된 모습에 그와 함께 했던 유대인들조차도 당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23절 24절을 보면, 과거 자신과 한편이었던 유대인들이 이제는 담대히 주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울을 죽이고자 합니다.

더구나 본문 23절에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하였는데”라고 할 때, ‘모의하다’라는 뜻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다’라는 뜻으로 ‘반드시 사울을 죽이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그가 담대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함으로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위협과 곤경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핍박했던 ‘사울’이었기에 그 누구도 ‘사울’이 회심하였다는 사실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을 양쪽 모두에게 배척을 받는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곤경에 빠진 그 때, ‘사울’을 믿어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의 사랑이 있었기에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세워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는 ‘사울’같이 열정적으로 앞장서 일하는 일꾼도 필요하지만, ‘바나바’와 같이 뒤에서 격려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일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바나바’는 어떤 사람이었을 까요?

첫 번째로 그는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원래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사도들이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나바’로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교회 안에서 늘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데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37절’에 보면 ‘바나바’는 자신의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 주의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을 위해서 교회가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나바’가 단순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서 이런 섬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면 결코 감당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철저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체험했고 그 사랑의 은혜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울’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고, 결국 ‘사울’을 ‘사도바울’이 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성도들 간의 다툼이 있고 문제가 생기면, 잘못한 사람은 없고, 전부가 자신은 다 잘했다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평안이 없고 사랑이 없는 교회를 보면, 성도들이 서로 “당신이 십자가 앞에 안 죽어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서양 격언에 “비판은 사람의 말을 바꾸지만, 격려는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죽었나 안 죽었나 판단하고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임을 먼저 보여주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는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4절, 15절’을 보면 ‘바나바’는 ‘바울’과 자신을 신으로 오해하는 자들 앞에서 옷을 찢으며 애통해 하고 ‘자신은 다만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오직 주님만 높이고 자신은 다만 주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가졌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영성학자 ‘피터 와그너’는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는 없고 영광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령충만하고 평안하며 부흥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희생과 헌신을 다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2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를 위한 일에 모든 성도가 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워나가고 부흥케 하며,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참된 평안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나바’와 같은 섬김과 오직 ‘주님을 위한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 모든 성도가 바울처럼, 바나바처럼 하나가 되어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기 위해 기도합시다.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