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3. 행 9:1-9. 무조건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2022.08.29 22:0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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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9:1-9. 무조건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찬 436(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많은 사람이 “열심히 사는데 왜 인생 살기가 이렇게 힘드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기독교 선교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환점이 되었던 ‘바울의 회심 사건’, ‘사울’이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바울’로 변화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의 삶에도 이런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혜가 있어야 우리의 삶이 변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오늘 본문 1, 2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 2절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의 모습으로 그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핍박자였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박해가 심해지자 성도들이 각 도시로 도망을 갔는데, 그 중에서 다마스쿠스는 지금의 시리아 지역으로 당시에는 상업도시로 도시가 크고 번성해서 많은 성도들이 그곳으로 피신을 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은 그 먼 곳까지 자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허가증까지 받아서 가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이처럼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러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일’,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열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자신의 외적인 조건, 즉 대단한 지식과 신분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그것으로 인해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 6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바울은 자신의 신분과 사회적 배경으로, 스스로 자신은 하나님을 올바로 잘 믿고 있다고 자부했으며, 그것이 교회를 핍박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열심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내 신앙에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어쩌면 그 열심히 사울과 같은 잘못된 열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 안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흘러야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오늘 본문 3절부터 6절을 보면, 이런 사울이 드디어 주님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3절부터 6절 말씀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 일행이 의기양양하여 살기 어린 눈으로 다마스쿠스에 당도했을 때, 거기에서 주님이 그의 길을 막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없던 잘못된 그의 열심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책망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울에게 새로운 사명,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한 사람에게 진정한 복음의 사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울의 옛 사람을 철저히 깨십니다.

오늘 본문 8절, 9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바울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의 옛 모습이 완전히 깨진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보지 못하고, 먹지 못했다’는 것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후에 과거 자신의 사회적 배경과 학식과 지식으로 하나님의 믿었던 잘못된 신앙의 삶이 완전히 깨지고 부서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사울이 의지했던 힘과 권세, 지식, 율법이 무너지고, 사울은 이제 예수님을 만났던 다마스쿠스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바울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7, 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전의 자신의 고집과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9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 직분을 임명하실 때, 그들로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다른 것을 절대 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두”라는 말씀이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든 모두 전체가 고운 밀가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개인이든 단체이든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님 앞의 고운 밀가루처럼 완전히 자신을 버리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예수님을 만나기는 원하지만, 정작 지금의 내 삶이 깨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아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원하지만, 성령충만을 받아 내 삶의 자아와 교만과 고집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질 때 이것은 절대 우리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축복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명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달걀껍질이 깨어지지 않으면 병아리가 나올 수 없고, 씨앗은 자기를 깨뜨려야 싹이 나와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의 옛 사람이 깨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고아가 어떻게 삽니까?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오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계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도 현재 고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내 삶에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것은 알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고아같은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성령충만한 능력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이 하루, 이 기도의 시간, 주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내 삶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간절히 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 앞에 나의 모든 욕심과 교만과 문제를 다 내려놓고, 이 하루를 예수와 함께 죽고, 또 예수로 다시 살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삶에 성령이 임하고, 그 삶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삶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시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모든 목장의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은혜가 모든 목장을 영적으로 깨우고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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