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자국 32 행 8:26-40  도망자에서 사명자로 

2022.08.26 11:2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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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발자국 32 행 8:26-40  도망자에서 사명자로    찬 191/ 통427 내가 매일 기쁘게 

   성경은 인간을 도망자로 표현합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도망쳤습니다. 이후로 모든 인간은 내면에 하나님의 낮을 피해 늘 뭔가에 쫓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은 도망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놀라운것은 하나님이 이런 도망자의 우리를 사명자로 만드신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모든 사도들과 집사들이 그러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믿음이 필요합니다.

첫째 도망자에서 사명자가 되려면 “성령의 인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계획과 발걸음은 하나님의 인도속에 있습니다.(잠16:9) 문제는 이것이 잘 안느껴질수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을 들어갈때 계획을 세운게 아니라. 단순히 쫓겨서 들어간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 “거기서 가사로 내려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연같지만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였다는걸 말합니다. 그래서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걸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왜 하필 광야입니까?” 질문할수 있습니다. 만약 광야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집중할수있었을까요? 더군다나 32-33절을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흔들리는 마차안에서 이사야의 예언중,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빌립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하고 때마침 광야에 오아시스가 등장하여 세례까지 줍니다.(35-36절) 마치 작은 시계 태엽이 정확하게 맞아 돌아가는것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내시는 AD 330년에 에티오피아를 변화시켜서 전세계 최초의 기독교국가를 만듭니다. 놀라운 섭리입니다. 이걸 통해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종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누군가 불순종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것입니다. 마치 요나처럼 인간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계획을 지체한다는점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인도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모르면 오늘 우리의 배우자와의 만남, 부모와 자녀의 만남, 교회와 공동체와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끔 “갈데 없어서 왔다, 맡을 사람이 없어서 이 일을 하게 됬다.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서 버티며 살아간다.”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도망자처럼 하루 하루 마지못해 살아가는 허무한 삶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곳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뜻을 찿아가는 사람은 거기서 사명을 발견합니다. 한 여인이 성폭행을 당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여인은 성폭행이었기에 아이를 무정하게 버립니다. 나중에 이 아이가 그런 자신의 존재를 알고는 “나의 인생은 실수였기에 아무도 원하지 않아”라는 생각때문에 날마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삶이 조금만 힘들거나 어려울때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우연히 하나님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와 섭리에서 나온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아픔이 치유되고 더나아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을 돕는 사명까지 알게됩니다. 그가 패서디나에 있는 하비스트락 교회의 체안목사님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볼수있을때 도망자의 인생이 사명자의 인생이 되어집니다.

둘째 도망자에서 사명자가 되려면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도망자는 늘 두려움과 불안, 분노와 미움의 한계를 넘지 못하지만 사명자는 그걸 발판으로 날마다 한계를 넘어갑니다. 빌립은 먼저 도망자로 사마리아지역을 들어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우리가 잘알듯 유대인들과 상종할수없는 원수관계에 있는 금단의 지역이었습니다. 미움을 넘어선것입니다. 27절을 보면 빌립은 두번째로 가사라는 지역을 들어가는데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였다고 말합니다. 빌립은 목회로 말하면 사마리아지역에서 크게 성공한것입니다. 근데 갑자기 모든걸 내려놓고 사람없는 광야로 나갑니다. 전도자로서는 자신을 비운것입니다. 거기다가 29절에 성령이 빌립에게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가까이 가라고 말합니다. 당시 이디오피아 사람은 흑인인데다가 성기능을 못하는 내시였습니다. 율법에서 접촉을 금지하고 있는 부정한 사람이었던것입니다. 성령이 온통 빌립이 순종할수없는 한계 투성이로 이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놀라운 것은 빌립이 이모든 리밋을 넘어섯다는 점입니다. 결국 그는 어떻게 됩니까? 행8: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아소도란 이스라엘의 원수국가였던 블레셋의 도시였고, 가이사랴는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우상도시였습니다. 이런곳들은 유대인들이 먹을것 입을것등 때문에 갈수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런곳을 전천후로 누비는 언리밋의 사람이 된걸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린 많은 리밋을 갖고 살아갑니다. 먹기 싫은것, 만나기 싫은것, 하기 싫은것등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찬송가만 원하고 어떤사람은 복음성가만 원합니다. 어떤사람은 구제만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나눠주는걸 싫어합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때 연하고 부드러운 흙으로 도자기를 만듭니다. 근데 딱딱하고 잘 빛어지지 않으면 사용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9:23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자기부인”이란 자신의 캐릭터, 자신의 한계, 자신의 고정관념들을 깨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도 자꾸 내성격, 내고집, 내스타일을 내세운다면 이미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잘못된 성격, 나중심의 고집과 미움, 시기 질투를 고치기 위해 우리의 한계를 마주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마주하는 한계가 있다면 그것에 도망치지 말고 넘어가는 사명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도망자에서 사명자가 되려면 “가던길을 계속 가야합니다.(Keepgoing)”

    도망자는 늘 안전과 안락함과 편안함을 쫓습니다. 왜냐면 늘 불안정하고 힘든삶을 그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명자는 안정이 아니라 사명을 쫓아갑니다. 행 8: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수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여기서 주의 영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 내었다고 기록 합니다. 이 표현 잘보면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의 잡아챈 것입니다. 왜그랬을까요? 한 나라의 재무장관에게 세례를 준것입니다. 그 자리에 머물고 싶고 그와 연을 이어, 안정감을 찿을 수있었습니다. 인간적 욕구가 올라오는 그 순간에 성령은 그것을 낚아챘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가던길 갔다고 표현합니다. 개역개정은 이 내시가 “흔연히 갔다”고 하는데 이것은 큰 기쁨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근데 감사 표현도 안합니다. 얼마나 화납니까? 근데 빌립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행9: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그는 계속해서 가던길 하던일 계속 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 망덕한 사람을 만나도, 고된 광야가 계속 나온다 할찌라도, 너무 귀한 이디오피아 내시를 놓치고, 안정감을 놓쳤어도, 편한길을 잃었어도, 사명을 쫓아 갔다고, 아니 성령이 그를  낚아 채, 사명의 자리로 옮겼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래야 사명자는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물은 고이면 썩는 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위해 안정된 직장, 건강을 찿습니다. 사실 교회에 나오는 이유도 그 안정감을 찿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인간의 역사를 보면 그 안정감을 찿으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에덴에서 모든 것이 완전하고 평안할때, 아담과 하와는 무너졌습니다. 예배자 다윗도 안락한 궁에서 편안게 쉴때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속에 가장 경제를 발전시킨 두왕조가 있습니다. 아합과 므낫세입니다. 근데 성경은 아합과 므낫세 왕조를 가장 영적타락의 시기로 정의합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진 예루살렘교회가  메가처치가 되자 더이상 전도를 안해도 될정로 유명해 졌습니다. 그때 산산히 조각납니다. 우린 이걸 고난과 핍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로소 이걸통해 사명을 성취하는 진짜 교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땅의 교회와 성도는 안정감과 편함을 찿게 될때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와 성도는 안정감을 찿는공동체가 아니고 사명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살아있는 성도라면 편안함과 안락함을 쫓아가려고 할때마다 성령이 우릴 낚아 챌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할것은 돈이 없고, 인기가 떨어지는것보다 더 두려워 할것이 바로 사명없이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는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사명의 길을 계속 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도망자가 아니라 사명자로 살게 하소서 이를 위해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시고 내 한계를 직시하며 맡은 사명의 길을 계속 가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 예배) 13개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지켜주시고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게하소서, 주일 및 새벽과 목장예배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잘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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